[오늘과 내일/김용석]‘우리 편’만 찾는 사람들에겐 미래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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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과 공정, 다양성 추구는
미래 성장과 생존의 열쇠다

김용석 산업1부장
김용석 산업1부장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한 정보기술(IT) 기업 여성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전 요즘 어린 여자아이를 보면 꼭 코딩을 배우라고 권유해요. 개발자 사회에서 아시안 여성은 희소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무조건 채용하려고 하죠. 영어를 못해도 상관없어요. 세계 어느 나라든, 살고 싶은 곳에서 좋은 직장을 구해 살 수 있어요.”

글로벌 IT 기업들이 남자 중심 개발자 사회에 다양성(diversity)을 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치열한 브레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남자 중에서만 사람을 뽑으면 전체 자원의 절반만 동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같은 성별, 문화를 가진 사람끼리만 모인 조직은 집단적 사고에 따른 실패를 피하기 어렵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이 다른 문화 연구에 공들이는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본 적이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동아시아 도서관은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 상당량의 한국 연구 자료를 사 모은다. 정작 한국에선 관심을 못 받고 소실되는 자료도 많다. 당시 그 도서관 한국학 연구 컬렉션의 핵심 테마는 1980년대 운동권 문화와 코리아 디아스포라(이민사회)였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자료 때문에 언젠가 우리는 한국 역사를 미국에서 연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UC버클리의 한국 자료는 하버드대에 비하면 크게 못 미치고, 하버드대의 연구 자료 중 한국 자료는 중국 자료에 크게 못 미친다고 한다. 중국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베이징대가 아니라 하버드대에 가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어 봤다.

강국들의 힘의 근원을 분석한 책 ‘강자의 조건’은 타 민족과 타 문화를 포용해 다양성을 추구한 것을 핵심으로 꼽았다. 포용을 위해 도입한 공정하고 개방적인 제도도 중요하다. 순혈주의를 고집한 일본과 나치 제국은 몰락했지만 타 민족을 포용한 로마와 몽골은 오래 흥했다는 것.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에게 “중국이 언제쯤 미국을 추월할지” 물었다. 리콴유는 “추월할 수 없을 것”이라 답한다. 중국의 인적 자원은 13억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보편적 가치와 개방적 제도를 앞세워 포용한 인구를 합치면) 70억에 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기업들을 봐도 다양성과 포용이 성공을 가져온 사례는 차고 넘친다. 구글 창업자는 이민자 출신이다. 코로나19 백신을 처음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도 터키 이민 2세 부부가 만든 회사다. 인재 제일주의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고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초반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대졸 여성 공채를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지금도 외국인 직원들이 문화적 장벽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프로젝트를 장기간 공들여 진행 중이다.

다양성은 성장은 물론 생존에 필요한 열쇠다. 하지만 역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포용과 공정, 다양성을 실현한 시대로 평가할지는 의문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우리 편’을 공공연히 말한다. 특정 집단에 ‘친일파’ ‘문빠’ 이름을 붙여 배척하면서 ‘우리 편’ 결집에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내로남불’이라는 이름이 붙은 잣대가 등장하기 일쑤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럴 바엔 차라리 선출직 공직자도 시험을 봐서 뽑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인공지능(AI)에 맡기는 게 낫겠다는 자조도 나왔다. 포용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엔 미래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죽비 소리처럼 들렸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우리 편#코딩#다양성#집단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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