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산재-임대차별… ‘다크 그림책’ 출간 잇따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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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현실 담아낸 그림책… 아이에게 권하기 쉽지 않지만
전문가 “해결책 제시된 책 골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읽는 게 좋아”

#1. 놀이터에서 나를 밀어 넘어뜨린 녀석. 알고 보니 녀석의 엄마는 일하느라 집에 거의 없고, 다쳐서 집에 있는 아빠는 술만 취하면 녀석을 때린다. 나는 엄마랑 산다. 이혼 후 엄마는 낮에도 계속 자고 가끔 울기도 한다. 집에 있고 싶지 않다.(‘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2. 우리 집에는 식탁, 욕조가 있다. 예전 집에서는 작은 밥상에서 밥을 먹었고, 욕조도 없었다. 난 “우리 집 진짜 좋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친구는 “거긴 임대 아파트야. 임대가 뭐가 좋아!”라고 쏘아붙이고는 학원으로 간다.(‘우리 집은’)

가정 폭력, 임대주택 차별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 이른바 ‘다크 그림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일본 소년사진신문사가 글을 쓴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다봄)는 지난달 나왔고, 조원희 작가의 ‘우리 집은’(이야기꽃)은 올해 2월 출간됐다.

산업재해, 부부 싸움 등 주제도 다양하다. 대만 산업재해피해자협회가 지은 ‘엄마, 달려요’(시금치)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가장의 남은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 엄마도 아이도 마음이 아프지만 같이 밥을 먹고 바람을 쐬며 일상을 이어간다. ‘혼나기 싫어요!’(나무말미)에서는 부부 싸움을 한 엄마 아빠가 아이를 다그치고 혼낸다. 아이는 부모가 싸우는 소리에 울며 잠들었다. 알코올의존증인 아빠가 엄마와 싸우는 날이면 집 밖으로 나와 달을 보는 아이를 그린 ‘달 밝은 밤’(창비),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는 아빠와 사는 힘겨운 삶을 그린 ‘아빠의 술친구’(씨드북)도 있다.

김장성 이야기꽃 대표는 “어두운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은 판매가 잘 되지는 않지만 감추기보다는 밖으로 끄집어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출간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집은’은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다루면서도 집은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혼나기 싫어요!’의 글을 쓴 김세실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다툼 뒤에 언제나 두 분의 감정을 살피며 느껴야 했던 불안감과 방향 없는 분노를 떠올리며 썼다”면서 “세상 모든 어른이 어린이를, 부모가 자녀를 좀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출판계는 그림책의 주제가 확장되면서 ‘다크 그림책’의 종류는 더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를 자녀에게 권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우울한 현실을 미리 알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전문가들은 어두운 얘기라고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문제 해결 방법이 제시된 책을 골라 부모가 내용을 숙지한 뒤 아이와 함께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김혜진 그림책보다연구소장은 “상처 받은 아이를 돕고 지지해 주는 인물이 등장하거나 문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온 책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도 찬찬히 내용을 받아들이고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돕는 상담사가 나오는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산재 피해자 가족이 마음을 털어놓으며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내용을 맨 뒤에 담은 ‘엄마, 달려요’가 해결책을 담은 대표적인 작품이다”라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다크 그림책#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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