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거품 걷어낼 금리조정 ‘예술’이 필요하다[동아광장/하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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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시장 과열에 거품 붕괴 역사 들여다봐야
금리인상 주저하다 사회불안과 피해 커져
중앙은행이 연착륙 ‘타이밍’ 고려할 시간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미국에선 중앙은행이 자산가격 거품 가능성을 경고했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금리인상 필요성도 언급했다. 세계적으로 자산시장 과열이 심상치 않다. 가상의 자산인 비트코인 값도 최근 6개월 동안 2.6배 올랐다. 장난삼아 만든 가상화폐라는 ‘도지코인’ 가격은 지난 한 달 사이 50배 폭등했다.

한국의 거품도 미국 못지않다. 부동산과 가상자산인 코인들이 우려된다. 서울 집값은 지난해 가계 연소득의 16.8배를 넘어 뉴욕(5.9배)이나 샌프란시스코(9.6배)와는 이미 비교가 안 된다. 코인들도 한국에선 ‘김치 프리미엄’이 붙어 미국보다 10% 정도 더 비싸다. 거래량도 한국이 세계 2위다. 도지코인 한 종목 거래액이 코스피 전체 거래액을 추월한 날도 있다.

초저금리 속에 백신이 보급되고 경제회복이 시작되자 거품이 한 단계 더 부풀어 오르는 모양새다. 초저금리의 리스크를 냉정히 따져볼 때다. 거품은 기준금리 외에도 금융규제, 세제, 미래전망의 영향을 모두 받지만 자산가격의 기본은 금리이므로 금리가 균형에서 많이 벗어나는 상황에선 다른 수단들만 가지고 거품에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금리인상도 물론 쉬운 수단은 아니다. 거품 붕괴의 두려움 때문이다. 붕괴는 대개 중앙은행의 급격한 금리인상 이후에 나타났다. 그래서 인상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정책을 제약한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금리인상 그 자체보다는 항상 타이밍이 문제였다.

일본의 거품 생성·붕괴 과정을 보자. 일본은행은 1986∼1987년 초에 5%이던 기준금리를 2.5%까지 내렸다.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하자 일본은행은 위험을 깨닫고 1987년 가을 금리인상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무당국의 반대로 2년이 더 지난 1989년에야 금리를 올리게 됐다. 금리가 6%까지 오른 1990년에 집값이 잡혔고, 1991년부터는 금리를 내렸는데 거품도 함께 붕괴했다. 금리인상의 타이밍이 2년 빨랐다면 어땠을까.

미국도 비슷했다. 미국은 2000∼2003년에 6.5%이던 기준금리를 1%까지 낮췄는데, 집값이 치솟자 2004년부터 금리를 올려 2006년엔 5.25%에 도달했다. 이후 2007년부터 집값이 떨어지며 서브프라임 위기가 시작됐다.

일본과 미국 모두 금리를 너무 많이 내렸다가 거품으로 사회 불안이 심해지자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타이밍이 핵심이다. 거품이 커지기 전에 금리를 올렸다면 피해는 더 작았을 것이다. 혹시 끝까지 금리를 안 올리고 버텼다면 거품 붕괴가 없었을까. 역사를 보면, 거품이 심해지면 시장금리가 스스로 올라 거품을 붕괴시키곤 했다. 붕괴를 막는다고 해도 거품이 가져오는 사회 불안과 정권이 받는 치명상까지 막지는 못한다.

타이밍이 중요한 것은, 늦으면 늦을수록 붕괴의 후유증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이다. 3억 원짜리 집이 6억 원이 된 후 곧바로 거품을 빼면 애초에 3억 원에 집을 산 사람은 실질적으로 피해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 집을 누군가가 6억 원에 산 다음에 거품이 빠지면 비싼 값에 이 집을 떠안은 사람은 후유증을 겪는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진다. 거품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서 건전성도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물가상승 기대가 높아지고 있어 금리를 올려도 긴축은 아니다.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 기대치를 뺀 값이 실질금리이므로 명목금리를 가만히 놔둬도 실질금리가 낮아지는 상황이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완화 정도는 더 심해진다.

근본적으로 금리는 제로 근처에 머물면 위험하다. 최근 연구들을 보면 초저금리는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저금리 혜택은 신용점수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받는데, 금리가 제로이면 빚내는 비용이 없으므로 이들은 돈이 필요 없어도 일단 쟁여두고 고수익 투자 기회를 찾게 된다. 그 돈은 대개 자산가격을 높이고 강자의 진입장벽을 높인다. 그렇게 불평등이 심해지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 제로 금리, 제로 인플레이션의 함정을 벗어나기 어렵다. 만약 금리와 물가상승률의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제로-제로’보다는 ‘2%-2%’가 낫다. 둘 다 실질금리는 0으로 같지만 그 내용은 크게 다르다.

지금 미국이 과감한 재정확대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 시장금리 상승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은 ‘제로-제로’ 함정을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도 제로의 함정을 벗어날 흔치 않은 기회를 맞고 있는지 모른다.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중앙은행 정책에서 타이밍은 예술(art)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행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금리조정#자산시장#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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