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짧은 중소 규모 공모전… 기본적인 표절 검증도 안 해
“대입-취업 스펙 수단으로 전락… 철저한 표절 검토 시스템 필요”

각종 문학 공모전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 ‘엽서시문학공모전’에 게시된 지난해 공모전 수다. 이곳은 등단을 꿈꾸는 문청(문학청년)들이 공모전을 찾기 위해 즐겨 찾는 사이트다. 최근 5년간 해마다 800건 이상의 공모전이 치러졌는데, 대부분 역사가 짧은 중소 규모다. 사이트 관계자는 “게시된 문학 공모전 중 ‘진짜 작가’를 뽑는 곳은 10∼20%에 불과하다”며 “일부 공모전은 상금을 주기는커녕 당선자에게 책을 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최근 A 씨가 기존 문학상 수상작을 도용해 5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문학 공모전 난립상이 도마에 올랐다. 우후죽순으로 공모전이 생기면서 표절 검증 등 관리가 부실해졌다는 것. 한 출판사 관계자는 “과거 유명 작가의 표절 논란이 일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일도 일반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 실망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문학 공모전을 ‘취업 스펙’으로 활용하려는 수요도 영향을 끼쳤다. 광고회사, 출판사 등 글쓰기와 직결된 직무의 경우 공모전 당선 경력이 취업에 유리해서다. 이 때문에 취업 관련 공모전을 취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는 문학 공모전 공고들이 자주 올라온다. 공모전 심사에 참여한 문학계 관계자는 “일반인도 문학을 가까이 즐기자는 취지는 좋았다”며 “하지만 일부 문학 공모전은 명함에 ‘소설가’ ‘시인’을 새기려는 사람들의 허영과 대입이나 취업을 위한 스펙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수가 늘어난 것에 비해 관리는 허술했다. 주요 공모전은 공신력 있는 문학평론가와 소설가가 심사에서 표절 여부를 검토하고, 추가 검증도 한다. 그러나 규모가 작거나 새로 생긴 공모전의 운영업체는 예산 부족으로 이런 과정을 생략한다. A 씨 표절 사태의 피해자인 작가 김민정 씨 작품도 온라인에 게재돼 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만 거쳤어도 도용작의 수상을 막을 수 있었다. A 씨가 당선된 한 문학상의 운영담당자는 “표절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문학계에선 문학 공모전 운영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학적 표현에 대한 표절 판단이 쉽지 않고, 기존 수상작 표절 여부를 걸러낼 시스템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지만 최소한의 방침은 마련돼야 한다는 것.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은 “저작권 문제 해결을 전제로 문학 작품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해 표절 여부를 검토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성희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은 “올 3월부터 전국 문학상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표절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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