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국의 도전다운 도전…“잘 준비하겠다” 아닌 “잘 할 자신 있다”

  • 뉴스1
  • 입력 2020년 12월 10일 20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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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정조국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지도자로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패트리어트 정조국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지도자로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 축구선수가 되는 것 자체가 좁은 문을 통과한 것이라는 말은, 축구판을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현재 K리그1·2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 대부분은 학창시절 지역을 평정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이들이다.

따라서 프로선수들 중에서 대중의 인지도를 쌓거나 나아가 ‘스타’라는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또 다시 바늘귀를 빠져나와야 가능한 일이다.

프로선수가 되는 것 이상으로 고행길이 또 프로팀 지도자의 길이다. 많은 프로선수들이 은퇴 후 지도자로 제2의 축구인생을 준비하지만 그 관문이 보통 좁은 게 아니다. 단순하게 접근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현재 1부리그 참가 클럽은 12개고 2부리그는 10개 팀이다. 요컨대 한국에서 프로팀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지도자는 22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K3·K4 클럽들이나 대학교 축구부의 지휘봉을 잡는 것도 녹록지 않은 경쟁을 통과해야한다. 현역 시절의 이름값이 번듯한 직장을 보장해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때문에 가시밭길을 가려는 선수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는 분위기다. 예전에는 “스타출신 선수의 은퇴=지도자로 새 출발”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러웠으나 지금은 아니다.

한 축구인은 “요즘 선수들이 선뜻 지도자의 길로 가려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고되고 성공 가능성도 떨어지는 까닭”이라면서 “젊은 시절 내내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왔는데 은퇴 후에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분위기도 많아졌다. 해설위원과 유튜브를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도 있고, 나아가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또 다른 삶을 택하는 이들도 적잖다”고 귀띔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은퇴한 정조국(36)이 내린 선택은 꽤 흥미롭다.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자체로 특별한 선택이라 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소신이 확고한 발언들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모습은 ‘도전다운 도전’이라 매력적이다.

정조국은 지난 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공식 은퇴식을 겸한 기자회견을 갖고 필드와의 안녕을 고했다. 정조국은 지난달 30일 ‘하나원큐 K리그2 대상 시상식 2020’ 때 프로축구연맹이 마련한 공로상을 받으면서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고 이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정조국은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통해 인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한 선수였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축구선수 정조국은 떠나지만 멋진 지도자 정조국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며 제2의 출발을 알렸다.

이날 정조국은 “사람일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이라 전제하면서도 “아마 나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그런 재능이 없다”고 웃은 뒤 “가장 큰 이유는 예능에 출연하는 것이 지도자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카리스마도 필요하고 무게감도 있어야하는데, 나중에 (예능에 출연했던 모습이)선수들에게 좀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선을 그었다.

겸손이 더 이상 미덕이 되지 않는 시대, 정조국은 거침없이 높은 지향점까지 설명했다. 그는 “K리그에서는 신인상-득점왕-MVP에 6번의 우승까지, 사실 이룰 것은 다 이뤘다. 그러나 대표선수 정조국은 미련이 남는다. 특히 선수로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이라면서 “다 내가 부족했던 탓이다. 감내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간절하다. 지도자로서는 꼭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고 싶다”는 큰 포부를 밝혔다.

따지고 보면 신인 선수가 대표선수 나아가 월드컵 대표팀 멤버를 노린다는 출사표를 던진 것과 다름없다. 좁고도 험한 길 앞에서, 일단 주눅은 들지 않고 있는 정조국이다.

정조국은 “주위에서 왜 지도자만 생각하느냐고 하는데 지도자는 정말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잘할 자신 있다. 축구를 하면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고 후배들에게 바른 길, 좋은 길을 알려주고 싶다”면서 “내가 잘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끝까지 다부진 목소리를 전했다.

사전은 ‘도전’이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이라 설명하고 있다. 쭈뼛쭈뼛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 응원해 달라”는 뻔한 공약 보다는 “진짜 잘할 자신 있다. 지켜봐 달라”는 정조국의 발언이 도전답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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