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가장 쌉니다” 메시지에 매장으로 달려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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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 움직이게 만드는 명품업계 마케팅 전략
“값 오른다니까 마음 급해져”
커뮤니티에 10만명 넘는 회원

서울 강남구에 사는 A 씨(61·여)는 올해 4월 집 근처 백화점 샤넬 매장 직원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핵심은 다음 달 주요 제품들에 대해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별생각이 없었던 그를 움직인 것은 마지막 문구였다. “사모님! 샤넬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있잖아요.”

A 씨는 문자메시지를 그대로 여고 동창 5명이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친구 2명과 함께 샤넬 매장을 방문해 하나 남아 있던 보이 샤넬 플랩백을 샀다. 그는 “뭐에 홀린 듯 백화점에 갔다. 가격이 오른다니까 그때 사두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한 번 메고 장롱 속에서 꺼낸 적이 없다”고 했다.

가수요를 실수요로 만들기 위한 명품 업체의 ‘은밀한 부추기기’는 그들만의 영업 전략 중 하나다. 비단 ‘샤테크(샤넬+재테크)’를 꿈꾸는 이들만이 대상은 아니다. 백화점 VIP인 A 씨처럼 구매력이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현재 단계에서의 명품 구매가 합리적 소비인 것처럼 설득하는 작업도 전략의 일환이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업체들은 오랫동안 명품이 고객의 가치를 높여 줄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명품이 금전적 이익으로 환산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며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 업체의 이 같은 전략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극대화된다. 주요 창구는 각종 명품 커뮤니티다. 한 명품 업체에서 근무했던 B 씨(35·여)의 업무 중 하나는 커뮤니티 관리였다. 10만 명 이상 회원을 보유한 커뮤니티들에 회원으로 등록한 후 “○○ 곧 가격 올린다는데 정말인가요?” 등의 글을 간헐적으로 남겼다고 한다. 글을 자주 올릴 경우 ‘업자’로 의심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B 씨에 따르면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게시글 댓글난에는 “내일 당장 줄 서러 갑니다” 등 구매 의사를 표시하는 회원들의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제품 수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빨리 구매해야 한다는 의도를 담은 “○○ 제품 이젠 국내에서 구할 수 없나요?” 등의 글도 올렸다. “품절 전에 일단 사놓고 봅니다”라는 반응이 다수였다. 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한 회원들로부터 쪽지를 수차례 받기도 했다. 대부분 “제가 ○○ 제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구매 의사가 있느냐”는 식이었다. B 씨는 “회사 내 높은 분들은 커뮤니티 운영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각종 정보를 공유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명품 업계는 곧 부추기기 전략마저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업체가 나서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직접 서로를 부추기고 설득하며 명품 수요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오픈런’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승리자라고 치켜세운다. 그리고 명품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한다”며 “이미 명품 업계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소비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명품 소비#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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