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이러스” vs “정치화 말라”…UN서 제대로 맞붙은 美中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0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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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갈등 관계인 미국과 중국이 유엔 총회 무대에서 제대로 맞붙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라 사상 처음 화상으로 치러진 각국의 정상연설 무대에서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분간의 짧은 연설을 통해 중국을 여러 차례 지목하면서 거세게 몰아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비록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제기하는 의혹들을 일일이 간접적으로 되받아쳤다. 중국의 부상으로 패권국의 지위를 위협받고 있는 미국과, 야욕을 최대한 숨기고 조용히 힘을 키워가는 중국 간의 관계가 이번에 제대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오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서 거의 시작과 동시에 ‘중국 바이러스’라는 말을 꺼내들며 공격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전 세계 188개국에서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보이지 않는 적 ‘중국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이런 역병을 세계에 퍼뜨린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태 초기에 중국은 국내 여행을 금지하면서도 해외여행은 막지 않아 전 세계를 감염시켰다”며 “유엔이 중국의 이런 행동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을 비난했다. 그는 “중국은 매년 수백만 톤의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고 독성이 강한 수은을 대기로 방출한다”며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미국의 거의 두 배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사전에 정해진 순서상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뒤 10여 분 뒤에 바로 화면에 등장한 시 주석은 “코로나19를 정치화하면 안 된다”며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시 주석은 “우리는 바이러스에 맞서서 상호 연대를 하고 과학자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며 “이 문제를 정치화하는 시도나 낙인을 찍는 행위는 거부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미국의 견제를 의식한 듯 “중국의 가장 큰 개발도상국으로 평화와 협력에 의한 발전을 도모한다”며 “우리는 패권이나 세력 확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는 냉전이나 어떤 나라와의 전쟁도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차이를 좁히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다른 나라와 분쟁을 해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앞서 장쥔(張軍) 유엔주재 중국 대사 역시 시 주석의 연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정치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책임론에 불만을 표시했다.

두 정상은 국제기구나 글로벌 경제에 대한 시각에서도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와, 사실상 중국의 지배를 받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가 사람 간 전염이 된다는 증거가 없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며 WHO에 대한 불신을 또다시 드러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코로나19 대응에서 WHO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서 WHO에 힘을 실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들의 미국에 대한 공격에 불편함을 드러내면서 “유엔이 정말 효율적인 조직이 되려면 테러나 강제노동 등 ‘진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며 유엔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지적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자국민의 이익을 외면한 채 해외에서 야심을 부리는 것은 실패한 접근이었다”면서 “나는 자랑스럽게 미국 우선주의를 도입했다. 당신들도 당신 나라를 먼저 챙겨라. 괜찮다. 그게 당신들이 할 일”이라고 자기 고유의 세계관을 드러냈다. 세계 각국에 분업과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을 권고한 것이다.

반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서 다자주의와 세계화를 강조했다. 그는 “경제의 세계화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 “이를 거스르는 것은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나 풍차에 달려드는 돈키호테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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