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요즘 ‘근육 언니들’이 뜬다

최고야기자 입력 2020-09-08 15:44수정 2020-09-0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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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은 마동석, 얼굴은 문근영.’



케이블TV E채널 ‘노는 언니’에 출연 중인 국가대표 수영선수 정유인이 첫 등장할 때 나타난 자막이다. 정 선수는 훈련으로 만들어진 어깨와 팔 근육이 조금 과장해서 배우 마동석만큼 우람하지만, 앳된 얼굴은 배우 문근영과 닮아 반전(反轉) 캐릭터로 인기다. 한때 정 선수는 근육에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근육을 줄여 보정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많은 여성 팬의 응원 속에서 정 선수는 방송에서 민소매를 입고 근육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채 즐거워한다.

여성과 근육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인다. 가녀린 몸, 하얀 피부를 여성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자존감을 찾아 건강하고 나답게 살기 위해 근육을 키우는 여성이 늘고 있다. 어떤 몸이 여성스러운 몸인가에 대해 여성 스스로조차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바라보던 편견을 깨는 데 도전하는 것이다.





웹 예능 ‘오늘부터 운동뚱’의 개그우먼 김민경도 ‘먹방’을 이어가기 위해 시작한 운동 덕분에 여성미를 재정의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김민경은 건강하게 먹기 위해 헬스와 필라테스를 한다.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라 ‘타고난 근(筋)수저’ ‘태릉(선수촌)이 빼앗긴 인재’ ‘민경장군’ 등 별명도 얻었다. 이렇게 얻은 호감 이미지로 최근 화장품 광고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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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은 계속돼왔다.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휴머니스트)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웅진지식하우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다산책방) ‘여자는 체력’(메멘토) 같은 책은 모두 젊은 여성이 운동 습관을 들이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동시에 운동하는 여성이 겪는 성차별적 시선과 싸워온 경험을 녹인 에세이다.


이들의 운동 목표는 다이어트보다는 건강과 근육에 방점이 있다. 날씬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튼튼한 몸으로 더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운동화 끈을 동여 멘다. 이들은 운동센터를 찾은 여성에게 다짜고짜 “다이어트하러 오셨죠”라고 물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여자는 체력’을 쓴 운동처방사 박은지 씨는 “여성은 운동하기 전에 자기 몸에 대한 재평가부터 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사회나 타인이 원하는 몸으로 맞추려는 경향이 생기기 쉽다”며 “내 적정 몸무게는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 때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운동이라는 이슈에서 소외되던 50대 이상의 여성도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이로 올해 50세가 된 배우 황석정은 KBS2TV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체중을 10kg 감량하고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해 큰 화제를 모았다. 갱년기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동화작가 이민숙 씨(50)가 쓴 ‘50, 우아한 근육’(꿈의지도)은 출간 한 달 만에 초판 2000권이 다 나갔다. 꿈의지도 관계자는 “그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도 모르게 ‘하얗고 마른 몸’이라는 19세기의 수동적인 여성상이 주입됐다면 이제는 헬스, 복싱을 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며 “여성 스스로 건강하고 행복하다 느낄 수 있는 일종의 페미니즘적 자각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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