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로버트 케네디’를 불러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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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캠페인/서스턴 클라크 지음·박상현 옮김/440쪽·2만2000원·모던아카이브

1968년 5월 미국 디트로이트 유세에서 어린 소녀의 손을 잡으려 팔을 내밀고 있는 로버트 케네디. 케네디는 처음에는 ‘존 F 케네디의 동생’ 정도로만 인식됐지만 선거운동이 무르익으면서 차츰 자신만의 진정성을 전달하게 됐다. ⓒ앤디 색스
1968년 5월 미국 디트로이트 유세에서 어린 소녀의 손을 잡으려 팔을 내밀고 있는 로버트 케네디. 케네디는 처음에는 ‘존 F 케네디의 동생’ 정도로만 인식됐지만 선거운동이 무르익으면서 차츰 자신만의 진정성을 전달하게 됐다. ⓒ앤디 색스
‘… 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증오가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폭력과 무법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 지혜와 연민, 그리고 정의감입니다….’

1968년 4월 4일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피살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그날 오후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유세가 잡혀 있었다. 유세 장소는 이 도시에서도 빈곤한 흑인들이 많은 곳이었다. 선거 참모들은 위험하다며 취소하자고 했지만 로버트 케네디는 감행했다. 사실상 즉흥연설을 통해 슬퍼하고 분노하며 일촉즉발이던 흑인들을 위로했다. 킹 목사 사후 24시간 동안 미국 119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 46명이 숨지고 약 2500명이 다쳤다. 인디애나폴리스는 소요가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대도시였다.

이 책은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1925∼1968)가 1968년 3월 16일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그해 6월 5일 JFK처럼 총탄에 숨질 때까지 82일간의 선거운동을 다뤘다. ‘무자비하고 까다롭고 호전적이며 무례하고 참을성 없으며 기회주의적’이란 평을 받던 그가 어떻게 ‘진정성 있고 선하며 품위 있고 온화하며 영리하고 단호하고 사람을 고무할 줄 아는’ 리더로 변해 대중이 우러르는 죽음을 맞았는지 꼼꼼한 취재와 분명한 ‘편애’로 기술했다.

영웅시된 그의 입지는 대중이 ‘케네디라는 이름의 마술에 홀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은 극심한 인종차별, 베트남전쟁 반대, 빈부 격차의 증대에 따른 빈곤 같은 당시 미국의 시대적 이슈를 그가 정치적 거래를 배제한 채 진정성 있게 부딪힌 결과로 파악한다. 그는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위로하는 말로 감추지 않고 그릇된 희망이나 망상으로 속이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과 반대되는 생각을 이야기하고, 자신에게 동조하는 청중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정치적으로는 위험하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기조를 밀고 나갔다.

로버트 케네디의 대선 도전은 JFK의 후광과 어렴풋한 죽음의 그림자를 극복하는 기록이었다. 하나는 성공했지만 다른 하나는 실패했다. 선거운동 81일째, 고비였던 캘리포니아주 예비경선 승리가 확실해진 순간 ‘그와 형 사이에 남은 가장 큰 유사점은 매사추세츠 억양 그리고 애국과 희생은 분리할 수 없다는 믿음’뿐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그는 운명(殞命)한다.

이 책은 2008년 출간됐다. 당시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마지막 해로 대선을 몇 개월 남겨 놨다. 저자는 1968년과 2008년의 미국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인종차별은 그대로고 원치 않는 이라크전쟁으로 도덕적 리더십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것. 책의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2008년과 지금의 미국 또한 흡사하다며 로버트 케네디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그러나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로버트 케네디의 ‘재림’이라고 생각됐듯 조 바이든도 그럴지는 솔직히 관심 없다. 다만 ‘(지지자들을) 이용하려는 대신 교육하고, 분열 대신 화해를 시도하고, 메시지를 주입하는 대신 대화하고, 지갑이 아닌 선한 마음에 호소하고, 안위를 약속하는 대신 희생을 요구’하는 젊은 정치인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생길 뿐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라스트 캠페인#서스턴 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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