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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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서 생식 능력을 잃은 주인공 M은 자신과 발가락이 닮았다면서 아내가 낳은 아들을 친아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이런 엉뚱한 망상을 빚어냅니다.

우리는 객관적 사실과 믿음의 불일치를 경험합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인식의 오류를 설파했습니다. 동굴에 갇힌 채 벽면을 바라보고 있는 포로들은 동굴 속에 켜진 촛불로 인해 벽에 비친 그림자를 객관적 사실로 인식합니다. 동굴의 비유는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그림)에 의해 동굴의 우상(偶像)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동굴의 우상은 개인적 특성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을 뜻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현상’을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이 1960년에 처음 정립한 용어입니다. 그는 실체적 진실(fact)과 경험적 지각(perception)의 괴리를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확증편향에 빠지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다른 정보는 무시하게 됩니다.

‘제 논에 물대기’란 뜻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한다’라는 뜻의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인간의 확증편향 경향을 보여주는 고사성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흠이 가거나 수정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는 잽싸게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정보는 버립니다. 수많은 편견과 오만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정치적 의견을 둘러싼 진영 논리는 대표적인 확증편향 사례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각 진영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얼마든지 취사선택하여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8·15 광화문 집회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간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통제해왔던 코로나19 대응이 물거품이 될 위기입니다. 수많은 자영업자와 기업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예비군 훈련이 취소됐고 재판이 멈췄습니다. 프로 스포츠가 다시 무관중 경기로 돌아섰으며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은 망연자실입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3단계로 접어들면 국민들은 더 큰 고통을 감당해야 합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어느 교회의 목사는 신문 광고까지 내면서 ‘외부 불순분자의 바이러스 테러’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에도 유튜브 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펼치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해주지 말고 구상권을 행사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순식간에 수십만 명이 동의했습니다. 확증편향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습니다. 누구든지 빠져들기 쉬운 나약한 인간의 오류입니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진영 논리에 갇힌 수많은 담론이 넘칩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객관적 실체와 가상의 그림자 사이에서 동요하는 포로와 같은 존재일지 모릅니다. 포로가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타인의 지각이나 경험을 자신의 것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성찰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확증편향#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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