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심[이준식의 한시 한 수]〈6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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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뚫고 나뭇잎 때리는 빗소릴랑 괘념치 말게./시 흥얼대며 느긋하게 걸은들 무슨 상관이랴./대지팡이 짚고 짚신 신으니 말 탄 것보다 가볍다네./무엇이 두려우랴? 안개비 속 도롱이 걸친 채 평생을 맡길진저.(1절)

산득한 봄바람에 취기가 사라져 살짝 찬 기운이 감돌긴 해도/산마루에 비낀 낙조가 외려 반가이 맞아주네./돌아보니 지나온 곳, 쓸쓸한 그곳,/돌아가리라. 비바람 불든 맑게 개든 개의치 않고.(2절)

(莫聽穿林打葉聲, 何妨吟嘯且徐行. 竹杖芒鞋輕勝馬, 誰파? 一蓑煙雨任平生. 料초春風吹酒醒, 微冷, 山頭斜照각相迎. 回首向來蕭瑟處, 歸去, 也無風雨也無晴.)

―‘정풍파(定風波)’ 소식(蘇軾·1037∼1101)

‘나들잇길에 비를 만나자 일행이 모두 낭패라 여겼지만 나만은 생각이 달랐는데 과연 얼마 후 날이 갰다’는 취지의 서문이 달린 작품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든 환하게 갠 날씨든 일비일희하지 않고 의연히 자신의 행로를 지키겠다는 평정심을 보여준다. 질퍽거리는 빗길을 죽장망혜(竹杖芒鞋)로 다니는 게 말 탄 것보다 경쾌할 리 없으련만 풀로 엮은 우비(도롱이) 하나에 평생을 맡기겠다는 호연지기도 자별하다. 봄바람 속 한기마저 산마루의 석양빛에서 위안을 얻기에 비바람의 세례를 받은 그 쓸쓸한 자리마저 외면하지 않는다. 어차피 일상의 영욕은 반복을 거듭하는 법이거늘. 정치적 갈등에 휩쓸려 무시로 좌천되곤 했던 관리 생활, 심지어 ‘오랑캐의 땅’이라는 남쪽 끝 해남도(海南島)까지 밀려나기도 했지만 시인은 초연함을 잃지 않았다.

‘정풍파’는 노래 가사인 사(詞)의 곡조 이름으로 시제와는 무관하다. 시와 달리 사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주로 묘사했다. 동파는 ‘두보의 시처럼 어떤 사건이나 사상, 이미지든 두루 포용하는’ 작법을 취했는데 이를 호방사(豪放詞)라 불렀고 동파가 그 원조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평정심#나들잇길#정풍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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