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찾은 행복의 열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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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연극 ‘강아지똥’

권정생 작가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강아지똥’. 예술의전당 제공
권정생 작가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강아지똥’. 예술의전당 제공
흔히 개똥은 보잘것없거나 엉터리인 것에 비유된다. 그런데 개똥이 주인공인 공연이 있다. 관객들은 똥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즐거워한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연극 ‘강아지똥’(연출 김정숙)이다. 이 연극은 ‘2020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 첫 번째 작품(7월 29일까지)으로 어린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원작은 52년간 폭넓게 사랑받아 온 권정생의 동화다. 연극은 20년간 150개 국내외 극장에서 공연된 스테디셀러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개똥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가 뭘까.

아이들은 똥을 악취가 나는 지저분한 배설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유쾌한 어감을 가진 ‘똥’은 다양한 소리와 모양으로 연상되는 호기심 덩어리다. 아이들은 선입견에 빠지지 않고 개똥이 주는 매력에 몰입한다.

원작에서 ‘강아지똥’은 쓸모없고 더럽고 무시 받는 서러운 존재다.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민들레 꽃봉오리를 틔우는 소중한 거름이 된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지만, 관객은 누구에게나 하찮은 존재가 모두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는 깨달음에 진한 감동을 받는다. ‘강아지똥’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내 주변을 떠올린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객석은 종국에는 눈물바다를 이룬다.

만약 ‘강아지똥’ 이야기를 예술적 상상력이 아닌, 음식물을 소화한 찌꺼기나 자연의 순환같이 생물학적으로 풀어냈다면 아이들 관객 절반은 곤히 자고 있었을 것이다.

넘쳐 나는 지식과 정보는 우리 생활을 바꿀 수는 있어도 삶을 바꿀 수는 없다. 연극 ‘강아지똥’은 보이는 곳 너머 보이지 않는 참다운 가치를 담는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 삶을 변화시킨다. 무대 위 ‘강아지똥’이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세상 본질을 바라보는 혜안과 희망을 선물 받는다. 관객의 혜안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다운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연극은 삶의 가치를 거창하고 부러움의 대상에서 찾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찾는다. 하찮게 취급받는 일상 속 많은 것들의 소중함이 절실히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강아지똥’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코로나19 시대’에 많은 것이 멈춰 버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들과의 불화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훗날 이 시간도 소중한 ‘강아지똥’이 될 것이다. 연극 ‘강아지똥’이 더욱 와 닿는 이유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에도 작은 흙집에서 검소하게 살며 전 재산을 기부했던 원작자 권정생이 꿈꾼 인생도 ‘강아지똥’ 같은 인생이었으리라.

황승경 연극평론가·공연예술학 박사
#연극#강아지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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