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빼앗긴 천재시인… 백석의 삶은 실패하지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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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월북시인 백석 비운의 삶 다뤄
“체제순응 거부하고 절필 택해”

시를 빼앗김으로 시를 지켰던 월북 시인 백석의 이야기로 8년 만에 돌아온 소설가 김연수. 그는 절필했으나 불멸하게 된 백석처럼 “실패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시를 빼앗김으로 시를 지켰던 월북 시인 백석의 이야기로 8년 만에 돌아온 소설가 김연수. 그는 절필했으나 불멸하게 된 백석처럼 “실패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소설가 김연수(50)가 8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시인들의 시인이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 작품으로 여전히 사랑받는 월북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1912∼1996·사진)의 죽기 전 7년간을 소재로 한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동네)이다.

백석은 근대 가장 주목받는 서정시인이었지만 분단 이후 택한 북한에서 번역 외에 제대로 작품을 쓰지 못하다 협동농장으로 쫓겨나 생을 마친 비운의 시인이다. 불운한 시대, 부조리한 체제에서 언어를 빼앗긴 천재 시인의 행로를 작가는 치밀한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채워나간다.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백석의 말년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이 많은 실패들은 왜 존재하는지, 그렇게 실패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 이유로 계속되는지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는 작가는 언젠가는 그의 삶을 소설로 다뤄보고 싶어 했다. 1959년의 백석과 같은 나이의 중년이 된 2016년경, 당이 원하는 시를 쓰지 않았단 이유로 가족과 양강도 삼수군으로 쫓겨 간 ‘실패’가 어떤 것인지 이해됐다. 그는 “좌절한 사람들의 ‘그 이후’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950년대까지는 북한의 실상과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사료가 남아있지만 이후로는 언론이 통제돼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어 작가적 상상력의 영역으로 남겨진 부분이 많다. 그는 “당시를 재구성하다 접하게 된 전쟁 직후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 이들을 살게 한 억척같은 생명력, 살아내겠다는 힘을 생각하게 됐다”며 “그럼에도 죽고 희생된 사람, 백석처럼 쓰지 못하게 된 이도 있었지만 그 힘이 체제보다 훨씬 더 길고 강했다”고 말했다.

김일성 개인숭배가 확고해지면서 백석은 체제를 찬양하는 시를 쓸 것인지, 거부하고 불이익을 감수할 것인지 기로에 놓였다. 혁명군 사기 고취와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하는 언어가 아닌 모든 작품에 무작위로 가해지는 비난과 압박에 백석은 무력해진다. 그는 1962년 이후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는 “백석이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와 상반되는 걸 택하는 것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체제에 순응하는 시 외엔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절필을 선택한 거라고 봅니다. ‘지금까지의 시로 남겠다’는 그 용기 덕분에 우리가 지금 그의 시를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김연수는 “백석 역시 자신의 결정에 후회와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그의 선택이 실패가 아님을 그의 시를 사랑하는 지금의 우리는 안다”며 “독자들에게도 인생에서 그런 선택의 순간이 있을 텐데 백석의 삶에 감정이입했을 이들에게 ‘그것 역시 실패가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소설가 김연수#일곱 해의 마지막#시인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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