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섬’ 아닌 제대로 된 소셜믹스로[광화문에서/염희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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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차장
염희진 산업2부 차장
올여름 입주를 앞두고 한창 공사 중인 동네 아파트 단지에는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두 동짜리 이 건물은 단지 안에 모여 있는 다른 동들과 달리, 다른 아파트로 착각할 만큼 언덕 높은 곳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알고 보니 임대주택이 입주한 임대동이었다.

최근 재개발로 지어진 신축 아파트에 임대주택 공급이 의무화되면서 이렇게 분양과 임대가 함께 있는 ‘소셜믹스’ 아파트는 점점 늘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계층이 함께 있으면서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2003년부터 소셜믹스 단지를 도입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현실은 앞선 사례처럼 외형조차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구역의 임대주택 비율을 의무적으로 10∼15% 이상 규정하고 있다. 조합 입장에서는 규정된 의무비율을 맞추기 급급해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임대주택을 공들여 지을 생각이 없다. ‘임대주택=서민주택’이라는 사회적 인식도 여전히 강하다. 지난해 입주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디에이치아너힐즈는 임대동만 상가처럼 층을 확 낮춰 비난을 받았다. 서울 마포구 ‘메세나폴리스’도 임대 가구와 일반분양 가구를 아예 다른 층에 분리하면서 입구와 엘리베이터, 비상계단까지 따로 만들었다. 단지 내 공용 커뮤니티 시설에 임대주택 거주민의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앞으로 소셜믹스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8월부터 재개발 구역의 임대주택 의무 공급 비율을 최대 30%까지 늘리기로 했다. 6일 발표된 수도권 공급대책의 핵심도 공공임대주택이었다. 일반분양 물량의 50% 이상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늘리면 분양가상한제 예외, 용적률 상향 조정 등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용산 정비창 부지에 2023년 8000채의 주택을 공급하면서 이 가운데 절반을 공공주택으로 짓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의 공급 목표량에만 치우친 나머지, 숫자만 늘어나는 임대주택으로는 제대로 된 융합을 모색하기 힘들다. 이제까지 임대주택은 ‘그들만의 섬’처럼 외형상으로 일반 주택과 분리된 후, 운영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커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특정 동·호수에, 복도식 건물로 조성되는 임대주택의 공급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임대주택에 대한 이미지는 쉽게 바뀔 수 없다. 또한 임대주택의 입주 자격을 사회경제적 소득으로만 한정짓는 것도 재고돼야 한다. 연령대에 따라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이 입주할 수 있도록 만든 행복주택이 임대주택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개발계획에 따르면 영등포 쪽방촌에는 2023년까지 영구임대주택, 행복주택, 분양주택이 어우러진 주택 1200채가 공급된다. 쪽방촌 거주민과 일반 입주민이 함께 사는 소셜믹스의 실험장인 셈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보면 앞으로 이런 식의 다양한 소셜믹스는 사회 곳곳에서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소셜믹스의 도입 취지인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한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
#소셜믹스#재개발#임대주택#공공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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