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땐, 원마일 웨어[간호섭의 패션 談談]〈37〉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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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타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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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미터(meter), 야드(yard), 리(里) 그리고 마일(mile).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들입니다. 교통수단이나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거리는 인간이 극복해야 할 한계였죠. 마라톤의 거리인 42.195km는 기원전 5세기경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라는 병사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0km나 되는 거리를 달린 것이 기원이라고 합니다. 마라톤은 인간 지구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스포츠로 자리 잡았죠.

더 나아가 거리의 한계는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9년에 쓴 공상과학 소설 ‘해저 2만 리’에서 주인공 네모 선장은 최신예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후에 과학의 발달로 해저 2만 리가 현실이 됐을 때 미국은 최초의 원자력잠수함에 노틸러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제 거리의 한계는 달나라까지 도달하는 쾌거를 이루어냈죠.

이렇게 우주여행까지도 꿈꾸던 인류가 요즘은 거리의 한계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또는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실천되고 있다 보니 생활 반경이 원마일(약 1.6km) 이내로 좁아졌습니다. 가벼운 운동을 하더라도 멀리 가지 못합니다. 동네 뒷산이나 공원이 전용 헬스클럽입니다. 외식을 하러 나가도 조그마한 근처 식당이 맘 편하고 음식을 포장해 오기도 좋죠. 배달을 시킬 수도 있지만 가까운 거리는 산책할 겸 직접 가기도 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정장을 입기도 어색합니다. 불편한 것이 한 이유겠지만 내 집에서 정장을 빼입고 있으려니 꼭 남의 집에 집들이 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퇴근 후에 편하게 걸치던 옷들을 입고 일하려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찝찝합니다. 늘 주말인 것 같은 편안함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게 하죠. 보시다시피 원마일 웨어는 괜히 등장한 게 아닙니다.

구김 없는 부드러운 소재, 넉넉한 사이즈 등 편안함에 몇 가지 팁만 더해도 원마일 웨어가 탄생합니다. 아무 무늬가 없는 원마일 웨어는 절대 위아래 세트로 입지 마세요. 만약 세트로 입는다면 로고나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레이어드하면 멋스럽습니다. 그리고 상의와 하의에 길이 차이를 주세요. 긴팔 상의에는 반바지를 매치하고, 반팔 상의에는 긴팔 니트나 셔츠를 두르고 긴바지를 입으세요. 이때 톡톡 튀는 색상의 양말이나 스니커즈로 포인트를 주면 옷에 금세 생기가 돌죠. 모자를 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모자가 달린 상의에도 챙이 있는 모자를 써보세요. 아이돌 스타의 공항패션 못지않습니다. 요즘 가까이 하기에는 먼 우리지만 원마일 웨어로 조금이나마 소소한 즐거움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원마일 웨어#재택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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