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사색 그리고 준비… 출판으로 본 시대의 단면[광화문에서/손효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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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손효림 문화부 차장
“대학 교재는 70∼80%가 학교 구내서점에서 판매돼요. 일반 서점 비중은 20% 정도입니다. 개강이 미뤄지고 온라인 수업을 하니까 교재를 진짜 안 사더라고요. 교수가 올린 PPT도 있고 강의 다시 보기도 가능하니 그걸로 때우는 거죠. 매출이 반 토막 났어요.”

한 대학 교재 출판사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책을 사는 이가 많아졌다고 해 실제 어떤지 물어보자 돌아온 답변이다. 일반 서점의 대학 교재 판매가 늘었다는 소식에 지인들이 “다행이다”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출판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일단 온라인 대형서점만 보면 긍정적이다. 예스24는 올해 1월부터 이달 8일까지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9%나 뛰었고, 알라딘 역시 3, 4월에 매출이 15% 증가했다. 반면 오프라인 서점 매출이 절반을 차지하는 교보문고는 1∼4월 판매량이 5%가량 줄었다. 고객이 직접 방문하는 동네 서점도 타격이 크다.

장르별로도 희비가 엇갈린다. 주식, 경제경영, 아동청소년 책은 상승이 두드러진다. ‘동학개미운동’으로 대표되는 주식 투자 열풍으로 주식 공부에 매달리는 이가 급증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제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모색하려는 시도가 경제경영 서적 구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상황과 많은 부분이 겹치는 소설 ‘페스트’를 비롯해 ‘데미안’, ‘이방인’ 등 고전을 읽고 삶과 사회를 성찰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자녀에게 필독서를 읽히려는 부모들은 지갑을 열었다. “아이가 놀다 지쳐 스스로 책을 집어 들더라”는 우스갯소리는 빈말이 아니었다.

여행 책 판매는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찾는 건 국내 여행 책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첫째 주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대만 등 해외여행 가이드북과 에세이가 여행 분야 1∼20위를 모조리 휩쓸었다. 올해는 ‘전국일주가이드북’, ‘대한민국 요즘여행’ 같은 책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어학 책 판매도 급감했다. 채용 일정 연기가 큰 영향을 미친 가운데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자 외국어 공부에 대한 관심도 주춤해졌다는 분석이다.

출판사들 가운데는 새 책 출간을 연기한 곳이 많다.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북 콘서트를 열기 어려운 데다 오프라인 이벤트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독자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출판 시장은 ‘젊은 피’ 역할을 하는 신간을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활기가 떨어진 게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선호하는 책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노트북, 휴대전화 사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전자책 판매가 증가하고, 오디오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람들의 생각과 원하는 바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편집, 마케팅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출판계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나침반은 이렇게 드러난 수많은 지층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코로나19#출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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