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면 개혁하라… 日 히타치의 교훈[동아광장/박상준]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입력 2020-05-02 03:00수정 2020-05-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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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존립 위기 처한 히타치
이사구성-사업전략 대대적 개편
‘스마트 시티’ 기업으로 부활 성공
독과점에 自足하는 한국 정치세력
히타치 경영진의 반성 새겨들어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히타치는 매출액 순위에서 일본 기업 중 10위에 올라 있는 대기업이다. 연간 매출액이 히타치보다 더 큰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1910년 발전기 제조사로 출발해 가전, 반도체, 원자력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창업 100주년을 딱 일 년 앞둔 2009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해 3월 결산에서 일본 제조업 사상 최악인 7873억 엔의 당기손실이 보고됐을 뿐만 아니라 자기자본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래의 사업 전망마저 불투명해서 이 100년 기업도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싶었다. 그러나 가와무라 다카시가 사장 겸 회장에 취임하면서 극적인 전환을 맞았다.

1962년 입사한 그는 공장장을 거쳐 부사장까지 올라갔지만 경영수업을 따로 받은 적은 없었다. 그가 히타치의 사장으로 내정되었다는 발표에 일본 언론은 히타치의 인재 부족을 개탄했다. 자신이 경영전문가가 아닌 것을 잘 아는 가와무라는 사장에 취임하기 전 우선 본사 근처 호텔에 방을 잡고 공부에 몰두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 IBM 등 히타치와 비슷한 사업 영역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혁신과 히타치의 현재 상황을 돌아보고, 히타치의 구조조정 방향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자본비율이 10%를 겨우 넘는 상황에서 가와무라는 증자를 통해 자본의 부족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증자 계획이 발표되자 히타치 주가가 2주 만에 20% 급락했다. 대형 증자를 환영하는 주주는 없지만, 투자가들이 기업의 미래 가치를 낙관하면 주가는 하락하지 않는다. 가와무라는 투자가들을 설득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갔다.


냉혹하고 무자비한 월스트리트의 투자가들에게 가와무라는 히타치가 황금알을 낳는 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주어야 했다. 그는 그 일을 임원들에게 맡기지 않고, 그 스스로 조금의 배려도 없이 바늘처럼 찔러오는 투자가들의 질문을 응대했다. 그의 플랜을 듣고 히타치에 베팅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투자가들의 몫이다. 그는 투자가들의 입장을 이해했고 그들의 무례한 발언을 통해 히타치를 향한 외부의 시각, 객관적 시각을 더 잘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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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을 살려 투자가들에게 히타치의 사업 계획을 알리는 ‘히타치 IR day’를 연례화했고, 사외이사가 이사회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했다. 현재 히타치의 이사회 멤버 11명 중 사내이사는 3명에 불과하다. 사외이사 중 4명은 외국인이고 그중 2명은 여성이다.

한편 주 전략사업으로 ‘사회 이노베이션’을 선택하고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부문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이제 히타치는 TV나 반도체를 수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스마트 시티’를 수출하는 기업이 되었다. 사업 실적이 눈부시게 개선되어 창사 이래 최고의 영업이익을 연거푸 경신했지만 히타치의 경영진은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는 개혁을 강조한다. 혁신이 없었던 1990년대의 히타치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1980년대 GE의 개혁이나 1990년대 IBM의 개혁과 같은 혁신이 1990년대의 히타치에도 있었다면, 2009년에 겪은 어닝 쇼크나 대규모 인원 감축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회사의 요직에 있던 일원으로 그 시절의 안이함을 뼈아프게 반성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외부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개혁을 게을리하는 조직은 경쟁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일본 기업의 경험은 한국의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치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거대 정당들은 내부의 정치에 몰두하면서 외부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일부 극렬 지지자들의 일탈을 정치적 이해타산으로만 접근하면서 시장의 환멸을 사고 있다. 사고 싶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불량률이 조금이라도 낮은 제품을 어쩔 수 없이 구매하는 것이 지금 한국 유권자들이 처한 상황이다. 특히 미래통합당의 최근 행보는 적자 기업이 경영권을 가지고 싸우는 꼴이어서 차마 보기에 민망하다. 부패한 조직을 잘라내지 않으면 건강한 조직까지 죽어 버린다는 일본 기업의 경험이 한국의 정당에도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히타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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