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 중요한 시대… 교육계는 준비돼 있나[광화문에서/김희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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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우리 ○○이가 성폭행했음 감사해야지 고소를 하고 난리야.”

“여자 배달 안 되나?”

“여자가 꽃뱀인가? 처음 보는 남자 차를 탔으면 각오는 해야지.”

온라인 개학 후 서울 한 초등학교 원격수업 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한 중앙부처가 성인을 대상으로 만든 온라인 성범죄 교육안이다. 학교가 아무 여과 없이 ‘19금 자료’를 초등생에게 가르친 건 또 다른 온라인 성범죄나 다름없다.

유치원을 갓 졸업한 아이들에게 팬티를 빨아 인증샷을 올리게 한 울산의 초등 1학년 담임교사는 어떤가.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화장실에서 속옷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처음 학교에 간 아이의 ‘효행숙제’를 도와주면서 이런 사진을 찍게 된 학부모 중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가 없었을까? ‘섹시팬티’, ‘분홍 속옷, 부끄부끄’ 따위의 댓글을 보고도 혹여 아이에게 해가 갈까 봐 아무 말 못 했을 엄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린다.

앞서 학기 초 이 교사는 학급 온라인 대화방에 올린 아이들의 사진에 ‘섹시한’ 등의 댓글을 달았다. 한 학부모가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했지만 울산강북교육청의 주의 조치가 전부였다. 전체 공개였던 그의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보면 눈을 의심케 할 사진과 단어가 난무한다. 그는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자칭 ‘변태 교사’라고 밝히며 “변태는 좋은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변태스러운 행동은 교육당국의 방치 속에 계속됐다. 수년간 이를 반복되게 만든 교육청과 해당 학교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일반인의 눈높이와 한참 먼 일들이 교육 현장에서 왜 계속될까. 앞서 교육부가 6억 원을 들여 2015년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돌이켜 보면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Q. 데이트 성폭력은 여자가 비용을 안 내서 생기나. ―A. 데이트 비용을 많이 쓰는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원하기 마련”이라고 가르치라고 한 것이 교육당국의 수준이다. ‘학생들이 교사의 온라인 수업 모습을 찍어 악용할 수 있다’며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했던 일부 교원단체가 울산 교사 사태에 아무 말 없는 것도 그러려니 싶다.

교육부의 표준 아닌 표준안, 교육청의 무책임, 교사의 일탈에 자성 없는 일부 교원단체가 있는 한 이런 일은 되풀이될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만 피해자가 아니다. 성교육 관련 연수를 열심히 받고, 외모나 성별에 대해 PC(Political Correctness·편견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않음)를 지키려 노력하는 수많은 교사가 피해자다.

성인지 감수성과 젠더 뉴트럴이 시대정신의 주요 키워드가 된 지 오래다. 본인의 행동이 어디부터 얼마나 잘못됐는지 모른 채 “학부모의 소통의 문제”라거나, “인터넷 실명제에 앞장서겠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울산 교사를 보면 화가 치민다. 그는 SNS에 이런 글을 남긴 바 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사육되는 줄 몰라야 한다. 그냥 놀고 있는데 사육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사육할 짐승들의 주인이다.” 과연 누가 짐승이고 사람인지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다수가 알리라 믿는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성인지 감수성#교육계#젠더 뉴트럴#울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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