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잘 듣겠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슬픔’ KoN의 보칼리제

  • 스포츠동아
  • 입력 2020년 4월 8일 15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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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1915년에 작곡한 ‘보칼리제(Vocalise)’는 앞서 1912년에 발표한 가곡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14번 째 작품이다. 그러니까 본래가 성악곡이란 얘기. 앞서 나온 13곡의 가곡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는데, 뒤늦게 추가되었다는 점 외에 가사가 없다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정말 특유의 것!) 서정이 시종일관 넘실거리는 작품으로 멜로디가 워낙 아름다워 독주악기로도 자주 연주된다. 심지어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직접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것도 있다.

국내 최초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KoN이 4월 1일에 내놓은 디지털 싱글 ‘RACHMANINOV(라흐마니노프)’에는 두 곡이 담겨 있다. 하나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중 18번 변주곡’이고 또 한 곡이 이 ‘보칼리제다.

KoN은 사실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로만 부르기엔 모자람이 있는 인물.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로 데뷔를 해서 그렇지 이후 행보를 보면 뮤지컬배우, 모델, 연기자로 끝없이 활동의 외연을 넓혀 온 멀티 아티스트다.

2019년에는 낭만파 시대의 전설적인 괴물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삶을 그린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주인공 파가니니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KoN의 ‘보칼리제’ 연주시간은 6분 52초. 모처럼(어쩌면 처음으로) 집시 스타일이 아닌 클래식 연주자로서 활을 쥔 연주다. KoN이 서울대 음대와 동 대학원에서 정식으로 클래식을 전공한 연주자임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과연 KoN은 ‘보칼리제’에서 화려하고 과장된 집시풍 비브라토의 발톱을 푹신한 살 속에 묻고 멜로디 라인을 투명하면서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을 고열로 끓여대지만, 절대 넘쳐흐르게 놔두지 않는 절제가 지금까지 들어온 KoN의 연주와 사뭇 다르다. 겉은 촉촉하고 속은 꽉 찬 연주다.

마치 “너에게 할 얘기가 있어”하고는 눈으로만 얘기하는 느낌. 그 내면이 절절하게, 끊임없이 이쪽으로 전해져 온다.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 같던 슬픔이 끝에 가서는 점점 멀어져 가더니 순식간에 아득해져 버린다. 그 여운이 천국처럼 길다.

‘보칼리제’는 이런 곡이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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