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대단했던 동생들”…붉게 물든 폴란드 우치-한국의 응원 현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6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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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 포르투갈에서 온 축구팬들이 16일 오후(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U-20 남자 축구대표팀 숙소 앞에서 선수들이 탄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U-20 축구대표팀은 한국 남자축구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와 함께 이강인 선수는 아시아 선수 최초 골든볼을 수상했다. (우치(폴란드)=뉴스1)
한국과 독일, 포르투갈에서 온 축구팬들이 16일 오후(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U-20 남자 축구대표팀 숙소 앞에서 선수들이 탄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U-20 축구대표팀은 한국 남자축구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와 함께 이강인 선수는 아시아 선수 최초 골든볼을 수상했다. (우치(폴란드)=뉴스1)
승패를 떠나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진 ‘리틀 태극전사들’에게 뜨거운 응원과 격려가 쏟아진 밤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을 통해 젊고 발랄한 모습으로 유쾌함을 전한 그들의 마지막 여정을 응원하기 위해 폴란드 우치와 한국의 거리 곳곳이 붉게 물들었다.

16일 폴란드 우치 경기장. 수용인원 1만8018명의 우치 스타디움에는 한국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온 한국 팬 1000여 명이 모여 들었다.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방문 응원단이 경기장을 찾았지만, 한국 팬들은 태극 마크를 얼굴에 페인팅하고 아리랑을 부르며 응원전을 펼쳤다.

경기는 1-3 한국의 패배. 준우승으로 여정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에게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수백 명의 응원단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버스에 오르는 선수들에게 격려를 건넸다. 선수들도 피곤을 무릅쓰고 팬들과 같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주는 등 마지막까지 팬 서비스를 했다. ‘붉은 악마’ 반우용 씨(47)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쫄지(겁먹지) 않고 당당히 강호들과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했던 동생들이다”고 말했다.

폴란드와 시차가 7시간인 한국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목청껏 응원을 펼친 팬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서울월드컵경기장, DGB대구은행파크, 정정용 감독의 모교인 경일대등에서 응원전이 펼쳐졌다. 승부가 주는 압박감을 즐기는 자세로 이겨낸 선수들처럼 시민들도 경기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응원 인증샷’ 등을 찍으며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붉은색 상의를 입은 시민 2만2000명이 다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이 선제골을 터뜨렸을 때는 열광의 도가니가 됐고, 우크라이나에 동점골, 역전골을 차례로 내주자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도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김민수 군(16)은 “20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은 우리 청소년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열심히 싸워준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결승에서 부진했던 미드필더 김정민(FC리퍼링)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많은 팬들이 그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욕하는 말은 듣지 말아라”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한다” 등의 글을 남기며 격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멋지게 놀고 나온 우리 선수들 자랑스럽다”며 축전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정정용 감독은 경기 때마다 ‘멋지게 놀고 나와라’고 했고 선수들은 경기를 마음껏 즐겼다. 젊음을 이해하고 넓게 품어준 정 감독과 선수들은 우리 마음에 가장 멋진 팀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한국 시간으로 일요일 새벽에 열린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결승전은 모처럼 축구로 한반도를 뜨겁게 한 한판이었다. 시청률 조사회사 ATAM에 따르면 지상파 3사가 중계한 결승전 실시간 시청률 합계는 42.49%로 나타났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에 따르면 15일 배달 주문 건수는 ‘150만 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주문량이 가장 많았던 음식은 치킨으로, 결승전을 앞둔 오후 9~12시주문량은 기존 대비 최대 5배 가량 많았다.

이번 대회는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확인한 계기가 됐다. 정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향후 5~10년 안에 자기 포지션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한국 축구가 더 발전하면 유럽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 준우승을 했다는 것은 다음에는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국내 축구계는 점차 체계화되고 있는 유소년 시스템이 이번 대회 성공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팀 21명 가운데 18명이 현재 K리그 소속이거나 K리그 산하 유스 클럽 출신이다. 연맹 관계자는 “울산 현대고 출신인 오세훈(아산), 금호고 출신인 엄원상(광주) 등이 유스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선수들이다. 과거에는 고교 3학년 위주로 팀이 운영됐지만 2017년부터 고교 주말리그에 저학년리그(고교 2학년 이하로 구성된 팀)가 병행돼 어린 선수들이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또한 올해부터 K리그에 22세 이하 의무 출전 제도(22세 이하 2명 엔트리 포함하고, 이중 한 명 반드시 선발출전)를 시행해 어린 선수들이 일찌감치 프로 무대를 경험할 수 있게 한 것도 큰 무대에서 강호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우치=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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