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勢 키우는 노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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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마다 노동조합 설립이 줄 잇고 있다. 전통 제조업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게임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노조가 생기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경영계는 복잡한 심경이다. 노조가 회사와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노조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노조 중 상당수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강성 노조 소속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향후 ‘경영 리스크’로 작용하지 않을지 우려가 높다.

최근 포스코에서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조가 민노총 소속 노조를 제치고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조합원 확보 경쟁에서 한노총이 민노총을 누른 것. 포스코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조가 없었다. 과거 한노총 계열의 노조가 있었지만 노조 간부의 금품수수 비리 파문으로 조합원이 이탈해 사실상 와해됐다. 이후 1997년 세워진 근로자 대의기구 성격의 노경협의회가 사측과 임금협상, 근로조건 협의 등을 진행하며 사실상 노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노총 노조가 이를 대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황을 누리는 반도체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SK하이닉스에는 올해 9월 기술사무직 노조가 생겼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그간 기술사무직 노조가 없었던 상황이라 일부에서 환영하는 직원들이 있다”고 전했다. 회사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노조 설립에 대해 사측 관계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로서 노조 활동에 대해 존중한다. 향후 교섭주체 및 단체협약 요구안에 대해 협의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네이버와 카카오, 국내 양대 포털업체도 민노총 소속 노조가 생겼다. 4월 네이버에 먼저 노조가 설립됐고, 카카오에서도 10월 노조가 뒤이어 설립됐다. 사측은 양쪽 모두 입장 표명을 조심스러워했다. 네이버 측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존중한다”, 카카오 측은 “더 좋은 근무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대화를 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 포털업계 관계자는 “상위에 있는 민노총이 워낙 강성이라 회사가 많이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기업의 특정 사안 때문에 노조가 출범한 사례도 있다. 7월에 설립된 대한항공 직원연대 노조는 한진 오너가 일가의 ‘갑질 파문’이 계기가 돼 출범했다. 대한항공 계열의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는 회사가 항공면허취소 위기에 몰리자 직원들이 나서 회사의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노조를 설립했다.

기업들은 노조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그간 노경협의회가 직원을 대표해온 포스코는 사측과의 임단협 과정에서 파업을 벌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양대 노총이 포스코 직원 1만7000여 명 중 약 1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했고 한노총이 교섭권을 쥔 이상 파업도 벌일 수 있다. 포항·광양제철소 등 포스코의 핵심 생산시설에서 파업이 벌어진다면 수출 차질을 피할 길이 없다. 한 기업 관계자는 “노조 그 자체는 얼마든 대화나 타협이 가능하지만, 상급단체인 민노총 한노총의 강성 분위기에 휘말리는 순간 회사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단기간 내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IT, 게임 업체들은 신규 게임 개발 기간에 파업이 벌어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은 선거와 표를 의식해 노조친화적인 행보를 보이는 정치권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노총이 주최한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노조가 편한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발언했다. 박 시장은 “핀란드는 노조 조합원 비율이 70%를 넘는다”며 자신을 “노동 존중 특별시장”이라고 칭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강성 노조가 득세한 프랑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하나같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경영계의 입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택 nabi@donga.com·신무경 기자
#문재인 정부#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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