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하지 못한 ‘대어 사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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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오사카 US오픈 테니스 우승
세리나, 심판과 다투다 무너져… 관중 야유로 시상식장 어수선
승자 오사카 죄인된 듯 “죄송”… 아버지 아이티인 어머니 일본인

시상식은 축하 박수가 아니라 관중 2만4000명의 야유로 뒤덮였다. 만 20세 나이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챔피언이 된 오사카 나오미(일본)는 마음껏 기뻐할 수도 없어 보였다. 모자를 눌러쓰며 난감한 표정을 지은 그는 마치 죄인처럼 “모든 사람이 윌리엄스의 우승을 원했을 텐데 이렇게 경기가 마무리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분에 가득 찬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그 옆에 서 있던 패자 세리나 윌리엄스(37)는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나오미의 우승을 축하한다”며 간신히 승자를 향한 예우를 보냈다.

9일 미국 뉴욕에서 끝난 시즌 마지막 메이저 테니스대회인 US오픈 여자 단식 결승. 세계 랭킹 19위 오사카는 어릴 적 자신의 우상인 윌리엄스(26위)를 1시간 19분 만에 2-0(6-2, 6-4)으로 눌렀다. 이로써 오사카는 일본 선수로는 남녀를 통틀어 사상 첫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자가 됐다. 아시아 선수로는 2011년 프랑스오픈과 2014년 호주오픈 여자 단식을 제패한 리나(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다음 달 16일 21세 생일을 맞는 오사카는 2013년 프로 데뷔 후 지난주까지 쌓은 통산 상금 총액(323만 달러)보다 많은 380만 달러(약 42억7000만 원)의 우승 상금을 받았다.

한국 테니스 간판스타 정현(22)이 자신의 트위터에 오사카 나오미의 우승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같이 찍은 사진을 올렸다. 둘은 같은 매니지먼트 업체 소속으로 오사카도 같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바 있다. 정현 트위터 캡처
한국 테니스 간판스타 정현(22)이 자신의 트위터에 오사카 나오미의 우승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같이 찍은 사진을 올렸다. 둘은 같은 매니지먼트 업체 소속으로 오사카도 같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바 있다. 정현 트위터 캡처
오사카의 아버지는 아이티인이며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사카에서 두 딸을 낳았다. 둘째가 오사카다. 자매 모두 아버지 손에 이끌려 테니스를 시작한 사연은 윌리엄스 자매와 흡사하다. 오사카는 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전문 테니스 교육을 받았다. 주니어 시절부터 파워 테니스로 무장해 ‘리틀 세리나’로 불린 오사카는 180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강력한 서브와 포핸드 스트로크가 주무기다. 결승에서 서브 최고 속도는 시속 191km에 이르렀다. 한 살 위 언니 마리의 세계 랭킹은 367위.

마거릿 코트가 갖고 있는 메이저 대회 단식 최다 우승 기록(24회)과 타이를 노린 윌리엄스는 주심 카를루스 하무스(47·포르투갈)와 신경전을 펼친 끝에 무너졌다. 윌리엄스는 2세트 들어 규정상 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코치 조언을 받아 경고를 받은 데 이어 5번째 자신의 서브 게임을 내준 뒤 격분한 나머지 라켓을 부러뜨려 두 번째 경고로 포인트까지 내줬다.

이 과정에서 주심과 언쟁을 반복한 윌리엄스는 3-3에서 자신의 서브 게임을 패한 뒤 주심에게 “한 점을 훔친 당신은 도둑이다”, “거짓말쟁이다” 등 거세게 항의했다. 이에 주심은 언어폭력을 이유로 ‘게임 페널티’를 부여해 2세트 3-4이던 스코어가 3-5로 벌어졌다. 경기 후 윌리엄스는 주심과 악수도 하지 않고 코트를 떠났다.

올해 초 세계 68위로 시즌을 시작한 오사카는 개인 최고인 7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윌리엄스가 처음 메이저 타이틀을 딴 1999년 오사카는 2세였다. 차세대 테니스 퀸을 넘보는 오사카는 “꿈이 이뤄졌다. 경기 후 윌리엄스와 포옹을 하는데 다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오늘밤 컴퓨터 게임을 한 뒤 푹 자고 싶다”며 웃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테니스 us오픈#오사카 나오미#세리나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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