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순간] <1> 삼성화재배구단 신치용 고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2일 05시 30분


한국배구 최고 지도자 신치용 삼성화재배구단 고문은 국가대표팀에서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티켓을 따낸 것을, V리그에서는 2라운드까지 꼴찌였다가 결국 챔프전 정상에 오른 2011∼2012시즌을 배구 인생 최고의 승부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스포츠포커스
한국배구 최고 지도자 신치용 삼성화재배구단 고문은 국가대표팀에서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티켓을 따낸 것을, V리그에서는 2라운드까지 꼴찌였다가 결국 챔프전 정상에 오른 2011∼2012시즌을 배구 인생 최고의 승부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스포츠포커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은 비단 여자핸드볼 선수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모든 스포츠인들에겐 그들만의 우생순이 있다. 언제 떠올려도 기분 좋은, 또는 가슴 뭉클한 스포츠인들의 그 짜릿한 기억들을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한다.

1999년 12월 29일 중국 상하이 후아동체육관. 이곳에서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배구 아시아 지역예선 최종전이 벌어졌다. 아시아에 배당된 출전권은 단 한 장이다. 한국은 이미 대만과 일본을 격파한 상태(2승)여서 중국을 꺾는다면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 해 한국은 중국에 2연승을 거두고 있어 분위기는 좋았다. 다만 중국의 홈 텃세가 걱정이었다. 특히 1970년대 말 아시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왕자웨이 중국 감독은 홈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반드시 한국전 연패를 끊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한국은 강했다. 한국은 중국을 3-0으로 완파하고 3전 전승으로 5회 연속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당시 감독인 신치용(63) 삼성화재배구단 고문은 그 날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했다.

“국내에선 다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일본과 중국 감독들이 대회를 앞두고 우리에게 안 진다고 큰 소리쳤다. 하지만 우리는 적지에서 해냈다. 너무 짜릿했다. 올림픽 티켓이 확정되는 그 순간이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승리를 장담했던 일본과 중국 감독은 대회 이후 경질된 걸로 안다. 또 내 개인적으로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코치에 이어 2000년에는 감독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기쁨을 누렸다.”

올림픽 본선행의 원동력은 감독의 리더십과 함께 성공적인 세대교체다. 실제로 세대교체를 통해 더 강해졌다. 김세진을 주장으로 선임한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주포인 신진식-김세진에 더해 이경수와 장병철이 가세하면서 전력은 한층 강화됐다.

안타까운 건 2000년 이후 남자배구가 긴 수렁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5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끝으로 4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신 고문은 “2020년 도쿄올림픽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기본에 충실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선수들이 싫어한다고, 피곤하다고 해서 안 시켜선 안 된다. 기본에서 지면 절대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화재배구단 신치용 고문. 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배구단 신치용 고문. 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를 이끌면서 숱한 우승을 만들어낸 신 고문은 지난해 말 일선에서 물러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공을 잡아 성지공고-성균관대-한국전력을 거친 신 고문은 지도자로서 최고의 승부사로 평가받는다. 배구인생 52년 동안 실업시절 77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2005년 출범한 V리그에서도 사상 최초로 7연속 우승을 달성하는 등 우승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다.

그 많은 우승 중에서 특히 그가 꼽은 최고 순간은 V리그 2010~2011시즌이다. 신 고문은 “2라운드 끝날 때 꼴찌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상에 오른 건 정말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1라운드 2승4패, 2라운드 1승5패로 고전했던 삼성화재는 겨우 봄 배구에 진출했고, 준PO~PO~챔프전을 치르면서 단 1패만 기록했을 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신 고문은 우승 원동력을 ‘팀워크’라고 했다.

“사실 삼성화재는 실업배구 시절엔 선수 층이 좋아 우승했다. 프로가 되면서 성적 역순 드래트프 때문에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외국인 선수를 앞에 내세우고, 기본과 함께 팀워크를 강화했다. 선수들이 헌신적으로 해줬다. 당시 우승 영상을 보면 기가 막힌다. 석진욱, 박철우 등이 부상으로 뛰지를 못했다.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이 나서 정상에 올랐다. 저 멤버가 어떻게 우승을 했나 싶을 정도다. 선수들이 해내겠다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때 뛰었던 선수들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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