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장애인이든 非장애인이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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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지음/324쪽·1만6000원·사계절

“나 피부 관리해야 해.”

10대 초반의 한여름 날, 동네 친구들이 물놀이를 가려 하자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저자의 집 소파에 드러누웠다. 골형성부전증으로 걷지 못하는 저자를 위한 행동이었다. 물놀이가 싫을 리 없는 친구의 마음을 안 저자는 “헛소리 말고 빨리 가라”며 연거푸 등을 떠민다. 친구는 못 이기는 척 나가더니 만화책 몇 권을 주고는 서둘러 떠났다. 저자는 이를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에 화답하는 상호작용인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라고 말한다.

지체장애 1급인 저자는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사회학과,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다. 15세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그는 장애인을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데 문제 제기를 하며 차근차근 변론해 나간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이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작은 키, 높지 않은 지능, 아토피 피부 등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도 마찬가지다. 인종, 성별도 그렇다. 이렇게 태어났다고 해서 이를 잘못된 삶이라 규정할 수 없다.

그리고 묻는다. 태아의 장애를 간단한 시술로 고칠 수 있다면 이를 시행해야 하는가. 의사가 태아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해 장애아가 태어났다면 소송을 제기하는 게 옳은가.

법정 분쟁, 실제 사건은 물론 문학, 영화를 넘나들며 장애가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임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이동권’, 소변을 편하게 볼 수 있는 ‘오줌권’ 등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장애인은 너무나 어렵게 확보해야 하는 현실도 지적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결핍을 지녔다. 이 취약함이 장애인, 비장애인을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임을 짚어내는 지점은 강렬한 깨달음을 준다. 버스를 타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장애인과 노인을 쳐다보지 않는 ‘예의 바른’ 무관심, 따돌림을 받아 홀로 남겨진 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등 일상에서의 존중이 확대돼 법과 제도로 안착되고 이는 다시 일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시작되길 가슴 깊이 응원하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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