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이태영]겨울올림픽 北참가 좋지만 스포츠의 순수함 잃지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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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대한체육회 고문·언론인
이태영 대한체육회 고문·언론인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레이스가 개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북한이 선수단과 예술단, 시범단 등 500여 명을 보낸다는 통보와 함께 오랜만의 남북회담이 열려 국내외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뒤늦게 아이스하키의 단일팀 구성 논의가 진행되면서 평창을 향한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 성화 봉송 레이스가 지나는 광화문광장에 나가보았다. 88서울올림픽에 이은 30년 만의 안방잔치라 들뜨는 게 당연하다. 여기에 그동안 불안했던 북한 리스크가 오히려 화합 무드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서울올림픽 당시 잠실 주경기장을 돌다 말고 춤을 추던 성화 주자 손기정 옹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올림픽에서 보는 겨레의 혼(魂)은 이렇게 우리의 격(格)을 높이고 선진화를 이끄는 힘이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하나 된 국민의 함성이 세계를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그날 그때는 광화문 세종대로를 메운 ‘붉은 악마’ 틈에 끼어, 또는 방송스튜디오에서 환희의 찬가를 불렀었다.

또 다른 광화문의 추억이 있다. 미친바람처럼 광우병 파동이 몰아치던 2008년 여름 베이징으로부터 날아온 올림픽 승전보와 개선 퍼레이드가 이 바람을 잠재우고 있었다. 검은 무리들의 멈출 줄 모르는 폭주는 이 뒤로도 계속되었지만 불의를 배척하는 올림픽 정신은 우리 땅에서 꽃을 피웠다. 이야말로 올림픽 메달 레이스나 어떤 외형의 성과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이른바 햇볕정책에 따라 남북 화해 무드가 무르익었던 2002년 아시아경기 때는 북한에서 처음으로 선수단과 함께 미녀응원단이 참가해 공동응원을 펼치면서 동포애의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때의 감동은 모두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고 말았으니 독일의 경우처럼 체제의 벽을 뛰어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스포츠의 생명은 규칙을 지키는 것, 그리고 순수함에 있다. 또 하나 이념이나 정치의 개입을 배제하는 데 있다. 지난해 12월 대구에서의 대학생 세계잔치가 정치적 탈선으로 얼룩졌던 일을 보면 어떤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을 어떻게 차단하고 예방하느냐를 면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이번 평창잔치만 해도 그 많은 북측 대표단의 참가 비용이며 일정 편성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이보다 혼돈 속의 우리 사회를 흔들어 보려는 예술단의 체제 선전 의도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주최 측의 대응이 궁금해진다. 자칫 잘못하다간 주객(主客)이 뒤바뀌듯 손님이 잔칫상의 주역이 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개최국의 깃발을 내리고 한반도 공동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는 참가국의 주장에 무리가 있다.

과거의 전례가 있다고 해서 같은 논리의 당위성을 가질 수는 없다. 이번 평창 올림픽은 세계 스포츠 그랜드슬램, 그리고 10여 년을 기다려 온 겨울의 꿈을 완성하며 스포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태영 대한체육회 고문·언론인
#평창 겨울올림픽#성화 봉송#남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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