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3無’ 119 상황실… 이대로면 ‘제2 제천참사’ 못피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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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첫 신고 후 30분간 충북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67통의 신고전화가 빗발쳤다. 특히 “2층 여자 사우나에 갇힌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됐다.

많은 사람의 생사가 엇갈린 절체절명의 순간. 119 상황실에서 현장 소방대원에게 긴박한 현장 상황을 전달한 무전은 한 건도 없었다. “제천 구조대. 여기는 상황실.” 이게 전부였다.

119 상황실 접수요원은 “빨리 2층 사람들을 구해 달라”는 애타는 신고가 계속 들어오는데도 현장에 무전을 치지 않았다. “구조대 빨리 2층으로. 여자 여자. 2층”이라고 상황실 동료에게 말했을 뿐이다. 동료가 휴대전화로 세 차례 현장 대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연결은 됐지만 신고 내용이 현장 지휘관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2층 사람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핵심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구조대원들은 사람이 없는 지하실을 수색하느라 골든타임을 날려버렸다.

○ 상황실-현장 단일 무전망…수시로 ‘지지직’

동아일보가 3일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입수한 제천 화재 소방 무전 녹취록과 119 신고 통화 녹취록 전문을 분석한 결과 당시 소방관들에게 무전기는 무용지물이었다. 화재 신고가 접수된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3시 53분부터 구조 작업이 종료된 다음 날 오전 0시 51분까지 약 9시간 동안 상황실 접수요원이 무전기를 사용한 횟수는 9번이었다. 모두 현장 대원들을 단순히 호출하거나 상황실로 연락하라는 내용뿐이었다. 위기에 처한 2층 사람들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정보는 없었다.

소방 관계자는 “당시 상황실 직원들이 무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전 교란 때문에 현장과 교신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현행 소방 무전 시스템은 상황실에서 현장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망과 대원들끼리 현장 상황을 공유할 때 쓰는 망이 동일하다. 상황실 관리자와 현장 대원들이 하나의 망을 함께 쓰는 것이다. 이 경우 한쪽이 무전을 보내면 다른 쪽은 무전을 쓸 수 없다. 화재 발생 직후처럼 현장 대원들 간 무전량이 많은 때는 상황실에서 현장에 무전으로 정보 전달을 할 수 없다. 상황실과 현장에서 동시에 무전 신호를 보낼 경우 소리가 울리고 엉키는 ‘하울링 현상’이 발생한다.

소방 관계자는 “제천 화재 초기 현장에 무전을 몇 번 시도했으나 아무 대답이 없어 할 수 없이 대원들에게 휴대전화로 연락을 해야 했다”며 “구조 작업을 할 때 통상 무전기보다 휴대전화에 의존하게 된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모든 재난 신고를 통합하는 국가재난안전망 도입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119 상황실과 현장 간 무전망을 분리하는 작업에 착수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 경찰처럼 ‘무전망 분리’ 시급

경찰은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112 상황실과 현장 경찰이 쓰는 망을 분리하고 있다. 신고 접수 내용을 시시각각 현장에 전파하고, 출동 경찰관들의 보고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다.

또 2012년 미흡한 초동 대처로 20대 여성이 살해된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접수 요원의 전문성을 강화했다. 형사·112·교통 등 특정 분야에서 3년 이상 경력을 쌓은 6년 차 이상 경찰관만 112 신고접수 업무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소방은 상황실 근무자에게 요구되는 별다른 기준이 없다. 이번 제천 화재 당시 상황실의 신고접수 요원은 상황실 근무 경력이 3개월밖에 안 된 3년 차 소방관이었다.

경찰은 112 신고 접수 시 사안을 중요도에 따라 코드0부터 코드4까지 5단계로 분류한다. 현장 상황에 따라 출동 인력과 현장 관리 방식을 달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방은 119 상황실에서 상황별 분류를 따로 하지 않는다. 소방청 관계자는 “매 순간이 위급하기 때문에 따로 분류할 필요가 없다. 현장 소방관들도 상황실의 무전 지령보다 자신들의 ‘감(感)’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또 장비의 지역별 편차가 큰 것도 소방의 문제다. 119에 신고된 주요 접수 내용을 실시간으로 현장에 전파하는 ‘소방정보 태블릿PC’는 서울과 경기 등 일부 소방본부에만 보급돼 있다. 소방관들이 각 지방자치단체 소속 지방공무원이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자체의 경우 소방관들이 쓰는 무전기 등 각종 장비의 성능이 떨어진다.

김동혁 hack@donga.com·배준우·이민준 기자
#119#상황실#화재#제천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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