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요리하는 대세男” 독거남들의 유쾌한 반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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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나비남 프로젝트’ 인기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보건지소에서 독거남들이 명란젓두부찌개를 만들기 위해 요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보건지소에서 독거남들이 명란젓두부찌개를 만들기 위해 요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7일 오후 2시 서울 양천구 신월보건지소 4층 구석 교실. 줄무늬 앞치마에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쓴 남성 13명이 삼삼오오 의자에 앉아있다. 시선은 한쪽 조리실습대에 고정돼 있다. 다소 어색해하던 남성들은 실습대 가스레인지 위에서 명란젓두부찌개와 불고기우엉조림이 모양새를 갖춰가자 엉덩이를 들썩이며 조금씩 관심을 드러냈다. 명란젓이 무엇이냐고 묻는 요리선생님 질문에 곧잘 대답도 한다. 약 30분간의 요리 시연이 끝나자 이들도 요리를 시작했다. 얼마 뒤 그럴싸한 맛도 나고 모양도 괜찮은 음식을 완성해 냈다.

언뜻 사설 요리학원 수업처럼 보이지만 양천구가 신월1동에 거주하는 50대 이상 독거남 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집밥요리교실 강좌다. 주로 홀로 지내며 끼니를 부실하게 챙겨 먹기 일쑤인 이들 독거남이 서로 어울리며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올 7월 시작했다. 매달 한두 차례 수업한다. 이날이 다섯 번째 수업인데 참석률이 평균 80%일 정도로 반응이 좋다.

물론 처음에는 다들 시큰둥했다. 구에서 요리강좌를 들으러 오라고 했지만 “요리는 무슨…. 차라리 밑반찬을 좀 보내주세요”란 반응이 대다수였다. 겨우겨우 참석한 독거남들이 안응자 요리선생님의 수업을 한 번 듣더니 상황이 반전됐다. 안 선생님의 친근하고 재미난 수업 방식이나 따라 하기 쉬운 요리법에 관심이 부쩍 솟구친 것이다. 신월1동에 사는 독거남은 동주민센터에 전화해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셔 잠들지도 모르니 수업 1시간 전에 꼭 깨워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수업 분위기도 따라서 나아졌다. 보통 4명이 함께 음식을 만드는데, 첫 시간만 해도 처음 만나서 그런지 다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수업이 거듭되면서 낯익은 사람이 생기고 요리 자체에도 익숙해지면서 즐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만난 ‘형’ ‘동생’끼리 술잔을 기울이는 경우도 잦아졌다. 집밥요리교실이 요리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혼자서만 지내던 사람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이날 참석자들도 수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서툴게나마 파와 미나리를 썰던 정우철 씨(55)는 “여기서 배운 요리를 집에 가서 가끔 손수 해먹는다. 좋은 정보도 얻고 좋은 형님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범석 씨(75)도 “요즘은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 아니냐. 다른 구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요리를 마치고 직접 만든 음식을 다 같이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요리수업이 있는 날은 아예 아침을 거르고 오는 사람도 있다. 참가자들은 “손수 만드는 음식이 무척 맛있어서 그렇다”며 웃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대부분 요리를 곧잘 따라 하셔서 실제 맛도 아주 좋다”고 덧붙였다. 남은 음식은 나눠서 각자 집으로 가져간다.

이 프로그램은 50대 이상 독거남을 위한 ‘나비남 프로젝트’ 중 하나다. ‘나비(非)남’은 ‘나는 혼자인 남성이 아니다’의 줄임말이다. 또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듯, 독거남도 자유롭게 의지를 펼칠 수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요리 프로그램은 나비남들이 심리적,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요리교실은 11월 14일이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양천구#나비남#프로젝트#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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