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양평군 화야산 기슭 서종사에서 만난 범일 스님은 뭐든지 참 쉬워 보였다.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 비포장도로를 고생해서 달려왔는데 “오랜만에 덜컹덜컹하니 좋지요?”라지 않나, 본인이 서울 봉은사에서 나온 뒤 무일푼으로 몸 누일 곳 없던 시절 얘기도 “더 나아지려고” 그랬던 거란다. “열혈 행복전도사 강의 같다”고 슬쩍 타박했더니 “아무렴 어떠냐. 물소리 새소리 들었으니 소풍 왔다 쳐라”며 껄껄 웃었다.
“움막 짓고 살며 벽돌 하나씩 기와 하나씩 서종사를 세운 지 17년 됐습니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 텃밭 일구고 불경 공부하며 사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지요. 그런데 올해 초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거립디다. 번뇌 끝에 ‘아, 아직 깨치지도 못한 것이 어디 안주하려 드나’ 혼내는 거구나 싶었죠. 속세건 절에서건 몸이 바쁜 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마음이 매이지 않으면 다 좋은 겁니다.”
말이야 쉽지. 속인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 골칫거리로 머리를 싸맨다. 단박에 스님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서 그렇다”며 토닥였다.
“인간은 정말 신비로운 존재예요. 입으로 걱정을 내뱉으면 진짜 우환이 몰려옵니다. 스스로 운 좋다 믿어야 행운도 찾아오죠. 아니라고요? 그건 첨부터 100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근심 10개 중 하나가 줄면 얼마나 나아진 겁니까. 그렇게 좋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9개만 보고 불평을 쏟아내죠. 그럼 다시 10으로 돌아가요. 8로 7로 내디뎌야 2도 1도 가는 건데. 지름길을 찾다간 있던 길도 잃어요.”
요즘 스님은 일주일에도 2, 3번씩 운수사와 서종사를 오간다. 사이버 도량 ‘조아질라고’(joajilrago.org)도 본인이 챙긴다. 건강을 걱정했더니 “어허,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 말했건만”이라며 짐짓 정색한 척했다. 스님은 “풀 한 포기 쳐다보며 풀의 소리를 떠올릴 여지만 있으면 법(法)은 어디서든 닦을 수 있다”며 “달이 보름달 그믐달로 차고 기울 듯 마음도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니 조급히 굴지 말라”고 말했다.
양평=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