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부형권]‘8·2대책에 대한 노무현 생각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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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경제부 차장
부형권 경제부 차장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체적 숫자를 내건 경제공약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숫자 약속은 더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02년 초 민주당 경선후보였던 그를 동행취재하면서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그 소신을 계속 지키기엔 경쟁 후보의 견제와 여론의 압박이 너무 강했다. ‘대세론’을 형성했던 당내 경선주자는 ‘주가 3000포인트 달성, 연간 일자리 50만 개 창출, 매년 6% 경제성장률’을 시원하게 내걸었다. 대선 본선에서 만난 더 강력한 대세론 후보도 ‘6% 경제 성장론’을 폈다. 세금 내는 유권자 마음은 자식 뒷바라지하는 부모 마음과 비슷할 때가 많다. 성적 떨어진 자녀가 “앞으론 열심히 할게요”라고 막연히 말하는 것보다, “다음 시험에서 평균 10점 이상 올릴 게요”라고 큰소리칠 때 왠지 더 믿음직스럽다. 10점 못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 각오가 가상하게 여겨진다. 결국 그도 ‘매년 7% 경제성장률’을 공약했다.

숫자는 목표와 비전을 명료하게 만들지만,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와 좌절을 그만큼 부각시킨다. 새 정부의 ‘8·2부동산대책’ 발표 다음 날(3일)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은 명백한 실패”라고 말했다.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 부동산 대책을 17번이나 발표했음에도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56%나 뛰었다. ‘8·2대책’은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라고 김 수석은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얼마나 동의할까? 그 생각이 궁금해 인터뷰하듯 그의 자서전(‘운명이다’·노무현재단 엮음)을 다시 읽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은 아래 문답은 지극히 자의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김수현 수석의 말대로 ‘명백한 실패’입니까.

“가격을 안정시키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땅 많이 가진 사람, 돈 많은 사람, 힘 있는 사람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순조롭게 실행하기 어려웠다. 참여정부는 (종합부동산세 같은) 보유세 제도를 적당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확실하게 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폭등한 건 맞지 않습니까.

“부동산 거래 신고를 실거래가로 하게 해서 과표가 계속 올라갔다.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과표가 올라가면 세액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마치 세율을 올린 것처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처럼 왜곡했다.”

―어떤 잘못도 없었다는 말씀이신지요.

“물론 정책 오류는 있었다. 나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유동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고 실제로 비판을 받았다. 유동성 규제를 하지 않고도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는지, 부동산 시장에 이상 동향이 없는지, 너무나 걱정이 돼서 몇 차례나 경제보좌관과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묻고 확인했다. 그때마다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것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다른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복지도 그렇다. ‘좌파정부’ ‘분배정부’라고 비난만 잔뜩 받았지, 과감한 분배 정책을 쓰지 못했다. 예산을 더 주고 싶었지만 관련 부처에서 사업을 빨리빨리 만들어 오지 않았다. 해마다 목표치를 주고 공무원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무조건 사업을 만들어 오라고 했어야 했다. 목표를 정해 지시하고 공무원들을 재촉하는 식으로 무식하게 했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노무현 청와대’ 사람들이 새 정부에 많이 포진해 있다. 며칠간 진행한 자서전과의 나 홀로 인터뷰를 마치면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뿐만 아니라, 국정운영 스타일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이 느낌 역시 지극히 자의적이긴 하다.
 
부형권 경제부 차장 bookum90@donga.com
#8·2대책#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좌파정부#분배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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