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환상의 세계’ 동화책 뒤엔 쓸쓸한 현실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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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곽한영 지음/336쪽·1만6000원·창비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잃는 것 중 하나. 호기심이다. 진실 또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딱히 없음을, 때로 모르는 편이 차라리 나았음을 거듭 확인하면서 호기심의 화로에 불씨가 꺼진다.

“요정의 가루를 뿌렸으니 이제 행복한 생각을 떠올려 봐. 너도 하늘을 날 수 있어.”

‘행복’이란 단어의 의미를 지금과 많이 다르게 이해했을 때 ‘피터 팬’을 처음 읽다 멈추고 한 점 의심 없이 침대 모서리에서 점프를 했었다. 어떻게 그런 멍청한 짓을 했는지 부끄러워해야 할 기억일까. 지금 세상 눈높이에서는 아마 그럴 거다.

피터 팬, 톰 소여의 모험, 보물섬, 닐스의 모험…. 이 책의 소제목 10개는 모두 요정 가루를 어떻게 구할까 골몰했던 1980년대 초중반에 읽은 동화들이다. 그 무렵 동네 골목에서 쭈쭈바를 물고 뛰어다니던 꼬마들 무리에 섞였던 독자라면 누구나 반길 이름들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쭈쭈바의 기억은 녹아버리고, 독한 술을 찾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실제 모델인 앨리스 리들은 말년에 가세가 기울자 저자 루이스 캐럴이 선물한 수기 원본을 경매에 내놓았다. 책을 사들인 미국 기업가의 만찬에 참석하고 캐럴의 이름을 내세운 아동기금 모금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부산대 사범대 교수인 저자는 2년 전 캐나다 밴쿠버의 한 헌책방에서 ‘키다리 아저씨’ 초판 중쇄본을 구입한 뒤 동화 초판본 수집을 시작했다. 재활용품점, 이베이, 인터넷 고서판매 사이트 등에서 책을 구입한 사연에 해당 작품 배경자료를 엮은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조, 트위들디, 허크의 이름을 오랜만에 활자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붕 들뜬다. 하지만 가족들로부터 평생 하녀처럼 부림받으며 현실도피 이데아로 빚어낸 ‘작은 아씨들’, 작가 사후에 변태성욕 표현물로 지탄받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인종과 계급을 차별하는 편견으로 가득한 ‘톰 소여의 모험’에 얽힌 팩트를 짚어 확인하는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다.

역시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곽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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