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치 히데아키 “이국서 숨진 조선인 군인-군속 2만2000명 恨 풀어주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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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 강제동원 사망자 명부’ 책으로 펴낸 기쿠치씨

일제에 강제동원돼 사망한 조선인 군인 군속 2만 2000명의 기록을 담은 책을 펴낸 기쿠치 히데아키 씨. 아사히신문 제공
일제에 강제동원돼 사망한 조선인 군인 군속 2만 2000명의 기록을 담은 책을 펴낸 기쿠치 히데아키 씨. 아사히신문 제공
“이국에서 죽어간 2만2000명의 원혼을 달래고 싶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군인이나 군속으로 강제 동원돼 희생된 조선인 2만2000명의 기록을 담은 책이 9일 일본에서 출판됐다고 도쿄신문이 전했다.

제목은 ‘구일본군 조선반도출신 군인 군속 사망자 명부’(신칸샤·新幹社)로 1400쪽에 이르는 역작이다. 도쿄(東京)도 다치카와(立川)시의 평범한 학원강사였던 기쿠치 히데아키(菊池英昭·75) 씨가 약 20년 걸려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그는 한국 민간단체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돕던 중 일본군 소속이던 조선인 사망자 명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 측에 건넨 약 2만2000명분의 명부였다.

한국 쪽에서 명부를 입수한 뒤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전사자들이 모두 20대 젊은이들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목숨을 잃었을까, 한 사람씩 정리하다 보면 전쟁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1993년경부터 그는 소속 부대별로 이름을 분류하고 생년월일, 사망 이유, 본적지 등 14개 항목을 컴퓨터에 하나하나 입력해갔다. 일본 정부의 자료는 특별한 순서 없이 손으로 작성된 것이어서 중복이나 누락이 적지 않았다. 옛일본군에 관한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는 등 씨름 끝에 지난해 말에야 완성했다.

작업 과정에서 많은 것이 드러났다. 희생자들의 사망 장소는 오키나와를 비롯해 남태평양 등 2차대전 당시 격전지가 적지 않았다. 1945년 3월 10일에는 경북 출신 120여 명이 도쿄의 해군 숙사에서 한꺼번에 사망했다. 도쿄 대공습이 있던 날이었다. 그는 이들이 전장에 보내지기 위해 숙사에 머물다가 변을 당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한반도 출신 군인 군속은 모두 24만4000여 명으로 이 중 약 2만2000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아시아 관계사 전문가인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게이센(惠泉)여학원대 명예교수는 “그의 집념으로 조선인들이 언제 어디에서 연행돼 어떻게 죽어갔는지, 개개인의 이름과 사망자의 전체상을 포착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일본의 전후 처리가 얼마나 불충분했는지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책 완성으로 한시름 놓았다는 기쿠치 씨는 “이 책을 들고 전몰지를 방문하고 싶다”고 다음 목표를 세웠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기쿠치 히데아키#이일제 강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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