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쓰고 싶은 건 해독제 없는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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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등단 40주년 기념 소설 출간
만년필로 원고지 1만2000장 채워… 세상 어지러워 작품 발표 늦춰

김홍신 소설가는 ‘바람으로 그린 그림’에 대해 “여성의 심리를 잘 몰라 여성인 모니카의 시점으로 글을 쓸 때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어려웠다”고 털어놓
았다. 해냄 제공
김홍신 소설가는 ‘바람으로 그린 그림’에 대해 “여성의 심리를 잘 몰라 여성인 모니카의 시점으로 글을 쓸 때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어려웠다”고 털어놓 았다. 해냄 제공
‘인간시장’ ‘김홍신의 대발해’ 등 선 굵은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홍신 씨(70)가 등단 40주년을 기념해 애달픈 사랑을 노래한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해냄)을 출간했다. ‘단 한 번의 사랑’(2015년)에 이어 또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온 것.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괴로울 때마다 명상하고 면벽 수행을 해봤는데 결국 가슴에 크게 남는 게 사랑이라는 말이었다. 인간에게 영원한 숙제이자 해독제가 없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만년필을 고집하는 그는 원고지 1만2000장에 꾹꾹 눌러 쓰며 작품을 완성했단다. 그는 “지난해가 등단 40주년이었지만 세상이 어지러워 올해 작품을 발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바람…’은 가톨릭 사제를 꿈꾸다 의사가 된 청년 리노와 성가대 반주를 했던 7세 연상의 여성 모니카의 엇갈린 사랑을 그렸다. 이야기는 리노와 모니카의 시선에서 교차돼 전개된다.

세례명이 리노인 그는 소설 속 주인공 리노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복사(服事·신부 옆에서 미사 진행을 돕는 이)였고 사제가 되려다 어머니의 반대로 의대에 지원한 적이 있다.

“자전적 소설은 아니에요. 옛 추억을 일부 꺼내 살을 붙이고 상상해서 쓴 작품입니다. 역사, 사회를 조명하는 소설도 준비하고 있지만 사랑에 대한 소설은 몇 편 더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스스로에 대해 “(정권에 관계없이) 평생 블랙리스트였다”고 말해 왔다.

“지난해 블랙리스트 논란이 있을 때 갑자기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전화해 ‘오늘 저녁식사를 꼭 대접하고 싶다’고 했어요. 사태가 수습된 후 만나자고 했더니 ‘저는 블랙리스트를 절대 만들지 않았어요’라며 전화를 끊더군요. 그제야 제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걸 알았어요.”

‘단 한 번…’에서 독립운동가를 심사하던 위원들이 친일파였고 이들의 실명을 밝혔다는 등의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이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그는 “부조리한 시대를 매섭게 비판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면 오히려 영광”이라며 웃었다.

한편 ‘김홍신의 대발해’를 집필할 때는 너무 힘들어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지만 마음공부를 하며 소설가는 소설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단다. 충남 논산시에 올해 집필관이 들어서고 내년 말에는 ‘김홍신문학관’이 완공된다. 충남 공주시에서 태어난 그는 논산에서 자랐다.

“글을 쓰고 제자를 키우며 세상에 보탬이 되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아요. ‘인간시장’ 등으로 고초를 겪을 때 저를 살려준 건 독자들이었습니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겁니다. 마지막까지 만년필을 손에 쥐고 눈을 감고 싶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소설가 김홍신#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문화계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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