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서울을 위한 향수 만든다면 ‘과실-장미-우디향’ 가미하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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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 수석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벨트뤼 인터뷰

▲ 루이뷔통 서울 전시에서 선보인 향수 컬렉션. 왼쪽 벽에는 과거, 오른쪽 벽에는 현재의 향수가 전시돼 있다. 루이뷔통 제공
▲ 루이뷔통 서울 전시에서 선보인 향수 컬렉션. 왼쪽 벽에는 과거, 오른쪽 벽에는 현재의 향수가 전시돼 있다. 루이뷔통 제공

서울이라는 도시, 그리고 서울 여자에 어울리는 향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그는 루이뷔통의 ‘아포제’ 향수를 들었다. 그는 루이뷔통의 수석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벨트뤼 씨. 12일 막 서울에 도착한 그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났다. DDP에선 루이비통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는 “하나의 향만 고르긴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습도가 높은 여름 날씨에는 ‘아포제’가 좋을 것 같다. 싱그러운 바람이 꽃을 가져다주는 향”이라고 말했다.

바로 향을 맡고 싶었다. 늘 하던 대로 손목 안쪽 부분에 뿌린 후 양쪽 손목끼리 맞대어 비비려는 순간….

“오 노(NO)!”

카발리에-벨트뤼 씨가 진정으로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온도가 높은 손목 안쪽에 뿌리고 거기에 문지르기까지 하는 것은 와인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마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과거의 향수는 오일 성분이 많아 문지르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스프레이로 분사하기 때문에 손등 위에 올려놓으면(뿌리면) 향이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향수도 향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여정입니다.”

2012년 루이뷔통 하우스의 수석 조향사가 된 카발리에-벨트뤼 씨는 프랑스 남부 그라스 태생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조향사였다. 가문에서 4세기 넘게 향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수천 번 실험을 통해 탄생한 향이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과정까지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향에 대한 열정은 결코 지칠 수 없다”고 말했다.
―루이뷔통 수석 조향사로서 한국을 찾은 까닭은….

▶ 자크 카발리에 벨투뤼 루이뷔통 수석 조향사가 4년여의 인고 끝에 선보인 7개의 향수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새로운 향수를 통해 여성성을 기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gna.com
▶ 자크 카발리에 벨투뤼 루이뷔통 수석 조향사가 4년여의 인고 끝에 선보인 7개의 향수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새로운 향수를 통해 여성성을 기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gna.com

“루이뷔통은 프랑스 역사의 한 부분이다. 163년간 하우스가 지켜온 모든 DNA가 DDP에서 열리는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에 담겨 있다. 서울 전시에는 이전 파리, 도쿄 전시와 달리 향수가 전시된 방이 따로 있다. 파리 전시가 2015년 12월 그랑 팔레에서 공개됐는데 우리 향수는 지난해 9월 선보였기 때문이다.”
―향수에서도 여정, 여행과 연결지을 만한 게 있을까.

“조향사는 원재료를 찾아 이곳저곳을 여행한다. 이렇게 탄생한 각 향수는 고유의 스토리가 있고, 나는 이 향수들을 통해서 감정을 창조하려고 했다. 향수는 또 고객의 여정과 함께한다.”

―세계적인 향수기업 피르메니히에서 22년을 일하다 2012년에 루이뷔통으로 이동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글로벌 럭셔리 1위 브랜드의 전속 수석 조향사 자리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루이뷔통에서는 전적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루이뷔통이 90년 만에 다시 향수를 론칭한다는 것은 매우 오랫동안 비밀이었다.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버크는 ‘고객에게 만족을 주고, 더 나아가 갈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도 그게 럭셔리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과거 향수 제조사에서 단순히 향을 만드는 일만 했다면 루이뷔통에서는 향수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향수의 삶 자체에 관여한다. 이제 소비자(consumers)가 아닌 고객(clients)을 생각하며 향수를 만든다.”
―2012년에 합류해 2016년에 무려 7가지 향수를 냈다.

1927년 나온 루이뷔통의 첫 향수 ‘부재의 시간’.
1927년 나온 루이뷔통의 첫 향수 ‘부재의 시간’.

“합류 첫날부터 ‘여정’이 시작됐다. 하우스의 장인정신과 브랜드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이들과 만나며 역사를 느끼려 했다. 가죽제품, 특별한 원재료 등 루이뷔통의 뿌리에 맞닿아 영감을 받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첫 업무였다. ‘로즈 데 방(Rose des Vents)’은 근무 3일째부터 시작했던 향수이다. 진부한 재료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피부 위에서 진정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싱싱한 꽃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에게 플로럴 향은 아주 어릴 때부터 탐구주제(quest)이다. 작은 재스민이 향으로 공간을 모두 감싸기도 한다. 그런 힘이 있다. 나는 이번 첫 컬렉션을 통해 여성성을 기념하고 싶었고, 꽃은 나에게 가장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다.”


―처음부터 7가지 향을 생각했는가.


“럭셔리는 갈망을 만드는 것이다. 꽃을 통해 갈망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사실 럭셔리 분야에서 7종류의 향수를 한번에 출시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 4년 동안 90여 개를 만들어 냈는데 여기서 2, 3개 내는 데 그치고 싶지 않았다. 직관적으로 7개가 좋았다.”

―가죽 향기를 재현하려 했다는 내용을 봤다.

“가죽 공방을 다니며 특유의 향을 느끼려 했다. 꽃 자체의 향에서 비롯된 환상적인 향에 가죽 향을 가미하고 싶었다. ‘VVN(루이뷔통 가방의 핸들에 쓰임)’이라고 불리는 천연소가죽의 특수한 향은 ‘당 라 포(Dans la peau)’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가죽 향이 더해진 향수는 최초이다. 루이뷔통은 가죽 공예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향이 루이뷔통의 정체성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도전이었다.”


―후각은 타고나는 것일까.


“나는 후각이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 타고난 천재는 없다. 훈련이 중요하다. 현재 55세이고 올해 7월 4일은 내가 훈련을 시작한 지 39년째 되는 날이다. 나는 여전히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조향사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의 시향병을 맡아보는 걸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사실 그라스 지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족 중에 향수 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가 있다. 일요일 점심에 정치나 향수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일종의 의례였다.”


―서울을 위해 새로운 향을 만든다면….


“오늘 공항에서 도심으로 오며 젊은이들을 지켜봤다.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향기로 표현하자면 과일의 느낌이 배었다 생각되고, 다면적인 특징을 갖기 때문에 장미로 표현하고 싶다. 역동성, 희망과 에너지가 버무려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과실향과 장미 향,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디(나무) 향을 가미하고 싶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루이비통#향수#조향#패션#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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