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암스테르담 수놓는 오케스트라의 향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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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교향악 축제를 가다

2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 중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의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 이날 악기 운반 장치의 고장으로 공연이 20분간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유혁준 씨 제공
2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 중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의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 이날 악기 운반 장치의 고장으로 공연이 20분간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유혁준 씨 제공
20일 오후 3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서 깊은 음악홀 콘세르트허바우.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콘서트 도중 사고가 발생했다. 볼프강 림의 피아노 협주곡 연주를 위해 무대 밑에서 수직으로 올라와야 하는 악기 운반 장치가 고장 난 것. 공연은 20분간 중단되고 다시 20분의 중간 휴식으로 이어졌다. 옆자리에서 30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그러나 청중은 불평 대신 박수를 보냈다.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사용돼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이 망망대해와도 같은 음악은 빈 무지크페어라인, 보스턴 심포니홀과 함께 세계 3대 콘서트 전용홀로 일컬어지는 콘세르트허바우의 기막힌 음향과 맞물려 소름 끼치는 감동으로 물결쳤다. 베를린 필하모닉홀이 화려한 ‘수(秀)’라면 콘세르트허바우는 한 차원 높은 완벽한 ‘은(隱)’의 세계다. 4악장 ‘코랄’(루터교의 찬송가) 주제를 되받는 바그너 튜바의 울림은 가히 천국의 느낌이었다. 에셴바흐는 보기 드문 ‘노바크판’ 악보를 택해 2악장 클라이맥스에서 단 한 번 심벌즈의 타격을 가했다.

암스털 강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운하로 연결돼 ‘네덜란드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물의 도시 암스테르담은 ‘암스털 강의 둑’이란 뜻이다. 얼핏 고흐와 렘브란트로 대표되는 미술이 먼저 연상되지만 10년 이상 빈 필, 베를린 필을 제치고 세계 오케스트라 순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를 품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빈과 함께 순수음악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기적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음악의 도시’인 셈이다.

국가가 아닌 6명의 시민에 의해 공연장 건립 운동이 시작돼 1888년 개관한 콘세르트허바우와 역사를 같이하는 RCO. 17일 내년부터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는 RCO 악장 출신 야프 판 즈베던이 지휘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은 충격이었다. 어찌 RCO를 부드러운 현과 황금빛 목금관 사운드만으로 가둘 수 있으랴. 러시아의 전설 므라빈스키의 음반에서 들릴 법한 정교함과 바늘로 찌르는 아픔이 동시에 가슴으로 스며왔다. 광폭하되 우아했고, 날카롭되 쏘지 않았다. 20일 안토니 헤르뮈스가 지휘봉을 든 북네덜란드 오케스트라의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에서 콘세르트허바우의 마르스할케르베이르트 파이프 오르간은 불을 뿜었다. 이제야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콘서트홀을 단 한 개 보유한 우리의 현실이 동시에 떠올랐다.

5월 콘세르트허바우에서 열린 48개 공연 가운데 오케스트라 연주회만 21회다. RCO 6회를 포함해 네덜란드 필하모닉,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 등 그야말로 ‘네덜란드판 교향악 축제’가 연일 펼쳐지고 있다. 17일부터 21일까지 관람한 6회 전 공연은 거의 매진이었다. 놀랍게도 모든 연주는 기립박수로 마무리됐다. ‘전쟁에 엄청난 돈을 쓰면서 왜 예술가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는 돈은 없을까요?’ 20일 안네 프랑크의 집 앞에서 떠올린 안네의 소망은 이제 암스테르담에서 어느 정도 이뤄졌음을 알게 했다.
 
암스테르담=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클라라하우스 대표 poetandlove@hanmail.net
#네덜란드 교향악 축제#크리스토프 에셴바흐#브루크너 교향곡 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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