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배달하고 행복 주문받아… 고객들도 “하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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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장애인의 날… 장애인 고용 사업장 2곳 가보니

● CJ대한통운 발달장애인 택배사업

봄비가 쏟아진 18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이현정 씨(오른쪽)와 임정희 씨가 수레를 끌며 택배상자를 배달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봄비가 쏟아진 18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이현정 씨(오른쪽)와 임정희 씨가 수레를 끌며 택배상자를 배달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8일 서울 노원구 노원로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 CJ대한통운 택배 트럭이 센터에 도착하자 20여 명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움직이는 사람들은 지적장애나 자폐 증상이 있는 발달장애인들이다. 상자 분류가 끝나자 1인 혹은 2인 1조로 수레에 상자를 싣고 담당 아파트를 향해 이동했다. 언뜻 10대 소녀처럼 보인 이현정 씨(30·여)와 임정희 씨(27·여)의 배송 현장에 동행했다. 이 씨는 말을 잘하고 임 씨는 힘이 세다.

함께 수레를 밀던 둘은 내리막길을 만나자 수레 방향을 바꿨다. 한 명이 손잡이를 끌고 내려가며 한 명은 위쪽에서 상자를 잡았다. 속도가 빨라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아파트 단지에 일일 장터가 열려 수레를 차도에서 끌어야 했다. 수시로 뒤를 살피던 둘은 자동차가 오면 재빨리 옆으로 비켰다. 철저하게 안전 수칙을 지키고 있었다.

집 앞에서 “택배요”라는 말과 함께 초인종을 누르는 건 이 씨의 몫. 임 씨가 상자를 건네고 이 씨는 확인 서명을 받는다. 택배를 받은 한 집에서는 수고한다며 둘에게 빵을 건네기도 했다. 주민들의 환대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이다.

2013년 11월 CJ대한통운이 서울시,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와 함께 발달장애인 택배 시범 사업을 하려 하자 일부 주민이 반대했다. “장애인들에게 택배를 받기 싫다”거나 “왜 하필 우리 아파트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정확한 배송이 이어지자 이런 목소리는 사그라졌다. 근무할 때마다 이 씨와 임 씨를 만나는 경비원 A 씨는 “열심히 사는 모습이 대견하고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발달장애인들이다. 임 씨의 아버지 임영철 씨(58)는 “딸이 택배 일을 한 후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대인 관계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5세 이상 장애인 고용률은 36.1%다. 발달장애인의 고용률은 전체 고용률의 절반 수준으로 추정된다. 발달장애인은 언어 능력이 부족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증상 등으로 원만한 조직 생활이 쉽지 않다. 각종 도구의 도움을 받는 신체적 장애인보다 일자리를 찾기가 더 힘들다. 발달장애인의 일이 대부분 실내에 모여서 하는 수공업인 까닭이다.

택배는 발달장애인의 부족한 사회성을 길러 준다는 면에서 효과적인 학습 수단이 된다. 또 발달장애인 중 매우 꼼꼼하고 암기력이 비상한 이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택배는 적합한 업무다. 몇 시에 출근하는지 묻자 이 씨는 “7시 14분에 일어나서 8시 58분 센터에 도착한다”고 하더니 “502호에는 청각장애인이 살아서 배달할 때 더 신경을 쓴다”고 했다.

이런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에 맞는 직무 개발에 나선 기업은 더 있다.

편의점 씨유(CU)는 지난해 7월부터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상품 검수, 진열, 청소 업무를 맡겼다. 씨유 관계자는 “작업을 익히는 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한 번 배우면 정말 완벽하게 일한다”고 말했다. 김환궁 고용노동부 장애인고용과장은 “장애인들의 직무 역량을 키우는 한편 장애인 특성에 맞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력이 이뤄진다면 고용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는 성장 정도가 평균보다 미숙한 상태에서 멈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희망의 증거라는 게 이재환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 시설장의 말이다.

“발달장애는 결코 더 나빠지지 않아요. 일을 하고 배울수록 점점 좋아지는 일만 있을 뿐이죠.”

● LG디스플레이 ‘나눔누리’

18일 오후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1층 ‘나눔누리 카페’에서 장애인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커피를 만들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제공
18일 오후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1층 ‘나눔누리 카페’에서 장애인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커피를 만들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제공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죠?”

이철순 나눔누리 대표는 계산대 앞 직원에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등으로 인해 발생한 신체 장애)를 가진 이들이 운영하고 있었지만 일반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일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고객안내센터 1층 나눔누리카페를 찾은 시간은 손님이 가장 몰리는 점심시간이었다. 직원들은 능숙한 바리스타처럼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지적장애 3급 이준엽 씨(19)도 나눔누리 카페에서 일한다. 지난해 10월 복지일자리센터를 통해 나눔누리에 취업한 지 6개월째다. 이 씨의 근무 시간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 씨는 매일 비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이 씨는 “나눔누리가 아니었다면 월급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차곡차곡 저금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누리는 장애인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자립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2012년 LG디스플레이가 LG그룹 계열사 중 처음으로 출범해 지금은 LG전자 ‘하누리’, LG화학 ‘행복누리’, LG생활건강 ‘밝은누리’ 등 다른 장애인 표준사업장의 ‘롤모델’로 자리잡았다.

이 대표는 “나눔누리 운영 전까지 장애인은 임금이 싸다거나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용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나눔누리는 전체 직원 534명 중 절반 가까운 255명이 장애인이다. 전국 장애인 표준사업장 중 가장 많은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파주, 구미 사업장에서 환경미화와 세차장, 마사지실, 사내 카페 등에서 일한다.

나눔누리 직원들은 하루 4시간, 혹은 8시간씩 근무한다. 비장애인 직원과 똑같은 임금과 성과급을 받고, 휴가 일수까지 차별 없이 근무한다.

LG디스플레이 공장 환경미화 업무를 맡고 있는 임상숙 씨(55·여·지체장애 4급)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없고, 일의 능률보다 안전을 강조하는 것이 나눔누리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2014년 입사해 3년째 나눔누리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 사내 게시판에는 ‘세차 일을 하는 직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건의 글이 올라왔다. 평소 세차장을 자주 이용하는 비장애인 직원이 여름과 겨울에도 바깥에서 쉴 수밖에 없는 장애인 직원을 보고 남긴 글이다. 나눔누리는 이후 구미 및 파주사업장에 전용 휴게실을 만들었다.

나눔누리가 운영하는 세차 서비스는 일주일 전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하루 평균 세차 차량은 평균 8대 안팎, 일반 세차장에 비해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꼼꼼함만큼은 자랑거리다.

지체장애가 있는 조현철 반장(45)은 나눔누리가 설립한 세차장에 2012년 입사한 터줏대감이다. 이제는 비장애인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워졌다. 조 반장은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제약 때문에 일의 능률은 떨어질지 몰라도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비장애인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장애인 한 명이 일자리를 갖게 되는 일이지만 경제력을 가져 자립할 수 있고, 가족에게도 마음의 여유와 활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장애인#고용#cj대한통운#lg디스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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