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미국 공장 설립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인건비가 비싼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엄포대로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에 엄청난 관세가 부과될 경우 삼성은 세계 최대 시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진퇴양난’에 몰려 있던 셈이다.
삼성전자는 가전공장을 지을 후보를 놓고 미국 내 다수의 주와 협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후보지로 유력한 곳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싼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 등이다. LG전자가 세탁기 공장을 짓기로 한 테네시도 이 근방이다. 앨라배마와 조지아는 각각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자동차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로서는 미국 주정부 중 사우스캐롤라이나가 가장 적극적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바다와 인접해 있어 허리케인이 자주 상륙하는 것이 문제다. 가전공장을 운영하기에는 부담이 큰 환경이어서 삼성전자도 막바지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미국 공장 설립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서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8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삼성전자의 초기 투자는 약 3억 달러(약 3450억 원)로 예상된다”며 구체적인 규모까지 밝혔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불공정 무역행위로 미국 기업들에 손실을 입히고 있다”고 비판한 지 이틀 만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큐 삼성’ 트윗에 이은 삼성의 대(對)미 투자 ‘대못 박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달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공장을 건설할 것이란 외신 기사를 링크하면서 이 코멘트를 남겼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정부의 해외 기업 압박을 거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가 약 3억 달러를 들여 오븐레인지 생산 기지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옮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WSJ는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제품 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앨라배마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5개 주와 초기 협상을 진행했으며, 이 중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블라이스우드가 가장 강력한 후보 지역”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로서도 반덤핑 관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쳐 더는 선택을 미루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미국은 올 초 중국에서 생산된 삼성과 LG의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매기기로 확정했다. 인건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세탁기 공장을 미국에 지어 관세를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서병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부사장)은 9일 서울 서초사옥에서 연 세탁기 신제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중장기 거점 전략에 따라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뉴욕의 한 소식통은 “삼성전자가 가전제품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관세 압력을 회피하고, 트럼프 새 행정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미국 내 가전공장 건립을 추진하는 건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런 방침이 알려지면서 5개 주뿐만 아니라 10개 이상의 주에서 ‘삼성 가전공장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 온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도 유치 경쟁에 나선 주정부들과의 ‘밀고 당기기’를 통해 공장 건설을 위한 가장 좋은 조건을 보장받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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