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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박제균의 휴먼정치]트럼프의 장벽, 문재인의 장벽

입력 2017-02-09 03:00업데이트 2017-02-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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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실장
미드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본다. 이 대하드라마엔 허구의 세계인 웨스터로스 대륙의 7왕국과 야만의 세계를 구분하는 북쪽 장벽(The Wall)이 등장한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길이가 500km쯤 되고, 높이는 200m가 넘는 무지막지한 스케일이다. 장벽 이북에 두 부류의 족속이 산다. 야만인쯤 되는 ‘야인(野人)’과 ‘화이트 워커’로 불리는 좀비다.

장벽을 쌓는 자, 공포를 쌓다

드라마를 볼수록 서구문명의 시원(始原)에 대한 메타포가 숨어 있음을 느낀다. 우선 장벽은 로마가 ‘미개한 야만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독일과 영국 내 제국 국경에 쌓았던 ‘게르마니아 방벽’과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연상케 한다. 야인은 당시에는 야만인이었으나 결국 로마에 동화돼 문명화된 게르만 앵글로색슨 골족(族) 등을 상징하는 듯하다. 공포의 상징인 좀비는 서구인들의 눈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인 데다 저항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훈족, 몽골족을 생각나게 한다.

서구인들의 핏속엔 게르만 대이동이나 아틸라의 훈족, 칭기즈칸의 몽골에 철저히 유린당했던 공포의 기억이 유전된다. 훈족의 침략으로부터 파리를 구한 성(聖) 준비에브가 국가 재난 시 구원의 성인으로 신성시되거나,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워싱턴포스트와 타임지가 칭기즈칸을 1000년의 역사를 바꾼 ‘밀레니엄 맨’으로 선정한 데는 그런 공포의 유전이 깔려 있다.

이방인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와 적대는 서구의 기독교 백인우월주의와 결합돼 극우 포퓰리즘의 양상으로 표출된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상징은 성 준비에브의 ‘중세판’인 잔 다르크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에 3000km의 장벽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헌법의 ‘정교(政敎) 분리’ 원칙을 파기해 기독교 신정(神政)국가로 만들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현대의 제국인 미국의 황제 트럼프가 세우려는 물리적 장벽을 비롯해 정치·경제·통상·사회·종교 전방위 장벽에 벽 바깥의 세계가 소용돌이친다. 지도자와 국민이 단합해 견뎌내야 할 이 위기에 지지율 1위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또 다른 ‘장벽’을 쌓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청산돼야 할 박정희 체제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한다”며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세력 청산이 혁명의 완성’이라고 했다. 그의 머릿속엔 아직 대한민국은 ‘친일·군부독재 세력이 강고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말로는 ‘화쟁(和諍)과 화합’을 주장하지만, 민주당도 분열시킬 정도로 친노·친문의 벽을 높이 쌓았다. 집권해서도 이런 장벽을 쌓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재검토’ 같은 운동권식 반미친중(反美親中) 논리로 트럼프의 무지막지한 장벽 앞에 맞설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 편, 네 편 가르는 文의 장벽

무릇 벽을 세우는 자, 벽으로 망한다. 로마도 방벽을 세우고, 제국다운 관용을 잃으면서 쇠락했다. 트럼프가 겹겹의 장벽을 세우는 한 미국은 더 이상 ‘안전한 제국’이 될 수 없다. ‘왕좌의 게임’에서 장벽을 지키는 존 스노 사령관은 사생아 출신이다. 그는 장벽의 문을 열어 야인을 받아들여 가공할 좀비들과의 일전에 대비한다. 트럼프든, 문재인이든 ‘내 편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벽을 세운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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