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주제 기획전에 미술관 전체 다 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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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년展’

▲ 천성명 작가가 합성수지로 빚은 ‘그림자를 삼키다’(2008년·앞쪽)와 독일 작가 키키 스미스의 동합금 조각 ‘여인과 양’(2009년)을 한 공간에 연결해 배치했다. 표면적으로는 ‘잠에서 깨어나는 인물’ 이야기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천성명 작가가 합성수지로 빚은 ‘그림자를 삼키다’(2008년·앞쪽)와 독일 작가 키키 스미스의 동합금 조각 ‘여인과 양’(2009년)을 한 공간에 연결해 배치했다. 표면적으로는 ‘잠에서 깨어나는 인물’ 이야기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부잣집 잔치다. 내년 2월 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여는 ‘과천 30년 특별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국현은 1986년 8월 25일 덕수궁 석조전 동관에서 과천으로 이전 개관한 뒤 소장품 5830여 점을 수집했다. 미술관 측은 “전체 소장품 7840여 점의 74%가 과천관 개관 이후 마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그 소장품 중심으로 구성한 대규모 기획전이다. 과천관 8개 전시실 모두를 비롯해 홀, 회랑 등 개방 공간 전체를 단일 주제 기획전에 활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 작품은 560여 점(작가 300여 명)에 이른다. 기획총괄을 맡은 강승완 학예연구1실장은 “소장품뿐 아니라 25% 정도는 신작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사진설치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그림자 연극’(1986년). 영상작가 장민승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됐다.
▲프랑스의 사진설치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그림자 연극’(1986년). 영상작가 장민승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됐다.
전시 표제는 작품을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닌 변화하는 생명체로 여겼음을 암시한다. ‘해석’ ‘순환’ ‘발견’ 등 3개 소주제별로 공간을 배분했다. 유사한 소재의 작품을 짝지워 비교해 살피게 하거나, 한 작품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재해석돼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로 활용되는 양상을 정리했다.

1층 원형전시실의 ‘해석: 관계’전을 담당한 임대근 학예연구사는 “낯익은 대표 소장품 37점을 2개씩 묶어 비교하는 방법적 틀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뻔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식상함에서 새로운 작품 독해를 위한 질문이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수레바퀴 조형물과 노점수레 사진작품을 나란히 놓고, 그랜드캐니언 이미지 옆에 몽유도원도를 원형으로 삼은 설치작품을 걸어놓은 식이다.

모든 짝지우기가 공감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작가 국적과 제작 시기의 경계를 뛰어넘어 연결점과 상이점을 더불어 찾으려 한 노력의 흔적은 뚜렷하다. 그러나 관람객이 짤막한 감상을 적도록 전시품 사이사이 놓아둔 테이프 기록 장치는 활용도가 애매해 보인다. 20일 오전 확인한 메모 내용은 ‘전시품에 쓰인 어항 관리하려면 힘들겠다’ ‘물고기가 몇 마리인지 궁금하다’ ‘억지로 이어내려 한 듯하다’ 정도였다.

▲김승영 작가가 나침반, 여행가방, 네온램프로 설치한 신작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2016년). 옆방에 놓인 그의 전작 ‘문’(1997년)과 대구를 이룬다.
▲김승영 작가가 나침반, 여행가방, 네온램프로 설치한 신작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2016년). 옆방에 놓인 그의 전작 ‘문’(1997년)과 대구를 이룬다.
모처럼의 대형 특별전이라 가급적 많은 작품을 선보이려는 마음이 든 건 당연했겠으나 한숨 돌릴 틈새 여백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주제 흐름이 공급자의 의도만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해 관람하는 처지에서는 여러모로 쉬이 피로해진다. 상층부 유리천창 통로에 설치한 건축가들의 ‘공간 변형 프로젝트’ 전시공간은 복사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난로를 방불케 하는 열기를 방출한다. 미술관 측은 “의도한 바”라고 했지만 접근조차 어려운 공간에서 정보를 읽어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전시실에 입장할 때마다 관람객을 감시하는 관리 인력이 눈을 떼지 않고 졸졸 따라붙도록 한 운영 방침 역시 보완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서구 유명 미술관의 전시실 관리 인력이 어떻게 근무하는지 국현 직원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차린 것은 많으나, 행여 수저 하나 상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잔칫상이다. 02-2188-60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과천 30년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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