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허 감독과 염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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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허구연 해설위원을 모르는 야구팬은 없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5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해설가로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타고난 입담도 있겠지만 꾸준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그는 해설하기 전 항상 그라운드에서 훈련 중인 선수들을 만나 취재를 한다.

그런데 해설가가 아닌 감독으로서도 그는 프로야구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86년 35세에 프로야구 청보 구단의 감독이 된 그는 역대 최연소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 39세가 된 ‘국민타자’ 이승엽이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추세를 볼 때 앞으로 그의 기록을 깨는 감독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불멸의 기록이 정작 그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흑(黑)역사’다.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대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를 감독으로 영입한 청보 구단은 9개월 20일 만에 그를 감독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감독으로서 그가 남긴 성적표는 15승 2무 40패, 승률 0.273이었다. 이후 3년 동안의 롯데 코치와 1년간의 메이저리그 연수를 마친 그는 야구 유니폼을 입는 대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지난해 두산 김태형 감독이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자 “최근 프로야구는 초임 감독이 좋은 성적을 계속 거두고 있다”며 “요즘 감독들은 코치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난 뒤라 그런지 초보 같지가 않다. 코치를 하며 감독을 뒤에서 지켜보며 자신만의 야구를 정립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29년 전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감독을 맡았던 자신에 대한 질책과 아쉬움을 드러낸 말이다.

지휘봉을 내려놓을 당시에도 그는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감독이 됐다. 중계석과 감독, 코치가 하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감독 생활에 대해 지금도 말을 아끼는 그는 2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도 “선수 생활 동안 2군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후보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성적 부진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허 위원의 실패 뒤에도 프로야구에서는 세대교체라는 명분을 건 구단들의 젊은 감독 모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중에는 실패한 감독도 있고, 성공한 감독도 있다. 가장 최근에 성공한 감독으로는 염경엽 넥센 감독을 꼽을 수 있다. 염 감독은 감독 첫해부터 3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며 제갈량에 빗댄 ‘염갈량’이라는 별명과 함께 명장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염 감독이 44세에 넥센 지휘봉을 처음 잡을 때 야구계의 반응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선수 시절 주로 대주자로 경기에 출전했었던 염 감독이 은퇴 후 코치보다는 구단 행정 직원으로서의 생활이 더 많았고, 코치로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약점이 그에게는 오히려 약이 됐다. 코치 시절 그는 야구 관련 책을 모조리 사서 읽었고, 경기 중 상대 팀의 작전에 항상 의문을 품고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또 구단 행정 직원으로 일하며 구단의 운영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경험의 폭을 넓게 해줬다. 면접을 통해 염 감독을 최종 낙점한 뒤 이장석 넥센 대표가 “대폭적인 팀 체질 개선이 필요한데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갈 리더로 염 감독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혁신적인 젊은 지도자’를 찾는다고 밝혔던 이 대표에게 ‘젊은’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준 것은 염 감독의 나이가 아닌 그가 갈고 닦아 온 내공이었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허구연#염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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