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권력 연장’보다 ‘4대 개혁’에 집중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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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추락, 부채 급증… 고통의 늪 빠져드는 한국 경제
국가 명운 건 개혁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인식 대전환 필요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개혁에 정권 운명 걸어야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대학 교수를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가장 많은 59.2%가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無道)하다’는 의미의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택했다. 올 한 해 한국 정치도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상생은 사라지고 상쟁이 판을 쳤으며 원칙은 무너지고 변칙만 기승을 부렸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리더와 대표는 있지만 정작 리더십과 책임은 자취를 감췄다.

대통령이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지 못하면서 정부의 경제 문제 해결 능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수출액이 21.1%나 급락하면서 경제성장률은 2%대로 추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 주체들의 채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부채 26%, 가계 부채 41%, 정부 부채가 61% 늘어난 데서 보듯이 우리 경제가 빚을 내 버티고 있다는 혹평마저 나왔다. 단언컨대 저성장, 각종 부채 누적, 주택 경기 하강에 금리 인상마저 겹치면 우리 경제는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지금도 ‘헬 조선’(한국이 지옥에 가까운 전혀 희망 없는 사회)이라는 신조어와 ‘금수저’ ‘흙수저’라는 ‘계급수저론’이 등장할 정도로 국민은 크게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사회 조사를 보면, 본인이 일생 동안 노력을 할 경우 다음 세대인 자식 세대에서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겨우 31%에 불과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다는 인식이 빠르게 고착화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정치 탓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무능한 정치가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절박하고 심각한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딴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여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집권 4년 차를 맞이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여전히 40%대에 이르는 견고한 국정 운영 지지도를 갖고 있고,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과 협력적 긴장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가 여당에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촉발된 야당의 분열 상황이 봉합되기는커녕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창출하려는 유혹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처지에서 보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레임덕을 막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하더라도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내년에 총선 공천과 차기 대권 구도를 둘러싸고 충돌하면 정치도 망가지고 경제도 망가질 수 있다.

경제가 망가지면 정권 재창출은커녕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권력 연장에 한눈팔지 말고 대한민국의 경제 체질을 바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4대 개혁’(공공, 노동, 금융, 교육)에 정권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현 정부는 역대 정부와는 달리 집권 초기에는 개혁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다. 박 대통령 취임사에서 ‘개혁’과 ‘혁신’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집권 초기에 창조경제와 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다가 갑자기 4대 개혁이 핵심 국가 어젠다로 등장했다.

올해 8월 6일 박 대통령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에서 4대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으로 3, 4년이 대한민국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성장엔진이 둔화하면서 저성장의 흐름이 고착화하고 있고 경제 고용 창출력은 약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4대 구조 개혁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역대 정부에서 해내지 못한 개혁”이라며 “반드시 이뤄 낼 것이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문제의식과 국정운영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국가의 명운이 달린 4대 개혁이 성공하려면 박 대통령의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선거’로 치르고 권력을 연장하려는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 개혁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핵심 과제가 누락된 알맹이 없는 개혁”이 아니라 경제를 진정 살리는 개혁을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정부를 너그럽게 마냥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혼용무도#헬 조선#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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