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현 첫 외국인 리더, 우려 씻고 새바람 일으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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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신 바르토메우 마리 신임 관장의 과제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42년 만에 첫 외국인 관장으로 선임된 바르토메우 마리 씨. 그는 “한국 미술인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우려하는지 알고 있다. 취
임 후 공식석상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artnet.com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42년 만에 첫 외국인 관장으로 선임된 바르토메우 마리 씨. 그는 “한국 미술인들이 나에 대해 무엇을 우려하는지 알고 있다. 취 임 후 공식석상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artnet.com
《 한국 미술계가 바야흐로 ‘외국인 리더’ 시대를 맞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스페인 출신의 바르토메우 마리 씨(49)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최대의 미술 행사인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6월 스웨덴 출신 마리아 린드 씨(49)가 맡은 데 이어 1973년 개관한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 수장 자리에 처음으로 외국인이 앉게 됐다. 》

18번째 국현 관장이 될 마리 내정자는 2일 관장 선임 발표 직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에 대한 한국 미술계의 반감과 논란을 잘 알고 있다. 14일 취임 후 미술관과 논의해 그에 대한 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마리 내정자의 관장 선임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국 미술계와 별 인연이 없던 인물’, ‘안팎의 해묵은 문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마리 씨는 통화에 이어 보내 온 e메일에서 “어떤 어젠다(의제)를 미술관 운영의 골자로 삼아야 할지 미술관, 문체부와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역대 관장이 해결하지 못한, 또는 오히려 악화시킨 국현의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서울대와 홍익대가 대표하는 국내 미술계의 학연 파벌 갈등이다. 지난해 개인전에서 만난 홍익대 교수 출신의 한 중견 작가는 “서울대 작가만 내세우는 서울대 교수 관장과 서울대 출신 학예실장이 있는 한 국현에는 아예 발도 안 딛겠다”고 말했다. 2013년 서울대 미대 정영목 교수가 기획한 국현 서울관 개관전 작가 39명 중 35명이 서울대 출신으로 선정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취임 후 서울대 출신 작가의 작품 구입비를 2배 가까이 늘렸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던 서울대 교수 출신의 정형민 전 관장은 결국 자신의 제자를 학예연구사로 부당 채용하려 한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고 경질됐다.

말 많고 탈 많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관장 인선이 마무리됐다. 사상 첫 외국인 관장은 임기를 마친 뒤 히딩크로 기억될까, 본프레러로 기억될까. 사진은 과천관 내부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말 많고 탈 많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관장 인선이 마무리됐다. 사상 첫 외국인 관장은 임기를 마친 뒤 히딩크로 기억될까, 본프레러로 기억될까. 사진은 과천관 내부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 외에도 ‘모 국현 관장 부인의 대학 동기동창 개인전이 우르르 열렸다’, ‘학예실장이 올해의 작가상 심사에서 자신의 대학 동문이 아닌 작가를 배제한 사실이 외국인 심사위원 항의로 들통났다’는 등 과거에도 학연 갈등으로 인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국현의 원활한 운영뿐 아니라 한국 미술계 전체의 발전을 막아 온 이 고질병은 임기 3년의 ‘첫 외국인 관장’ 앞에 놓인 무엇보다 중요한 선결 과제다.

마리 관장 내정자도 바로 전에 몸담았던 스페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의 관장 직을 사임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석연찮은 운신에 대해 명확하게 소명할 필요가 있다. 당시 현지 언론은 “마리 관장이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큰 작품을 기획전에서 철수시키려다가 큐레이터가 반발하자 기획전을 통째로 취소하고 하루 만에 번복했으며, 사임 직전 앙심을 풀 듯 해당 큐레이터를 해고했다”고 보도했다. 아직까지 이를 놓고 마리 내정자가 회장을 맡고 있는 국제현대미술관위원회(CIMAM)를 비롯한 국내외 미술계에서는 “예술의 자유와 전시 운영 주체의 윤리를 해쳤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마리 내정자는 e메일을 통해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다. 내 모든 행동은 미술관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공립미술관 큐레이터는 “변명이 아니라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마리 내정자나 국현 모두 홀가분해질 것”이라며 “그가 히딩크가 될지 본프레러가 될지는 그 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국립현대미술관#바르토메우마리#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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