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아버지 화났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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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아들을 ‘오냐오냐’ 키워 어리광쟁이로 만든 아버지가 집에 손님을 모시고 오자 일곱 살 아들이 아버지를 반기며 물었다.

“아버지 밥 먹었는가?”

손님 앞에서 점잖은 체면을 구긴 아버지가 무안해서 짐짓 화를 내며 꾸중했다.

“예끼, 존댓말을 써야지 아버지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냐?”

그러자 영문 모르는 어린 아들은 “어마, 아버지 화났는가?”라고 반문하여 아버지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평소에 가르치지 않은 존댓말이 갑자기 튀어나올 리 없는 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들은 이제 장년이 되었지만 우린 가끔 그 말을 패러디하여 써먹으며 웃곤 한다.

20여 년간 가깝게 지내온 지인 둘이 올봄에 중학교 교사직에서 명예퇴직을 자원했다. 각각 영어와 사회 과목 교사였는데 “삼십 년 교직생활에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교육에 열정과 성의를 갖고 열심히 할수록 더 상처를 받는 교직생활에서 피로감을 느낀다며 교육현장을 떠나는 모습에 참 안타까웠다. 그분들이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열성인지 오랫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에 ‘아, 아깝다’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듣는 이야기는 참 우울하다. 지난주에 만난 한 여교사는 학생이 말썽을 부려 학부모를 만나 보면 그 학생이 왜 말썽꾸러기가 되었는지 알겠더라고 했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상스러운 말을 하여 학교에 불려온 엄마가 그럴 만해서 했을 것이란 식으로 자식 변호에만 열중할 뿐 “선생님께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에 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넓은 정원 잔디를 잡초 하나 없이 말쑥하게 가꾸는 지인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별수 없어요. 그저 잡초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때그때 뽑아줘야지 제때 뽑지 않으면 풀씨가 퍼져서 다음 해엔 걷잡을 수가 없어져요. 한 번 뽑으면 될 것을 놔두면 백배 고생하게 되거든요”라고 답했다. 그 방면에 문외한인 내가 “그냥 놔두면 겨울에 저절로 죽을 텐데 뭐 하러 뽑느라 고생해요?”라고 나름대로 비책을 내놓았더니 “겨울엔 죽은 것 같지만 이듬해가 되면 잡초 하나가 100개로 퍼진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나쁜 버릇도 그럴 것이다. 선생님에게 상소리를 하는 아이가 부모에게 하지 말란 법 없고, 상소리는 또한 상스러운 행동으로 번질 것이다. ‘자식농사’ 역시 제때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엔 백배 고생하게 된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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