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역사교과서 國定化 강행 이후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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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17년부터 중고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 체제로 바꾸기로 확정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어제 “현행 검정제도로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며 국정화안을 확정 고시했다고 밝혔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대(對)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검정교과서가 몇 종인지는 형식적 숫자일 뿐이고 사실상 1종의 편향 교과서”라며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적 교과서를 선택해 다양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이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국가관과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정부 여당의 우려에 적잖은 국민이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양성을 상실했으면 다양성 회복에 나서야지, 다양성을 아예 틀어막고 국정 단일화로 가는 것은 정도(正道)라 하기 어렵다. 황 총리는 “현행 교과서들은 1948년 정부수립으로 서술해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축소했다”며 잘못이라고 지적했으나 교육부가 발간한 교과서 집필기준이 그렇게 돼 있다는 것을 아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국정화 문제를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다. 처음 정부 방침을 발표한 뒤 바로 행정예고에 들어갔고 찬반 의견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달도 안 돼 쫓기듯 시행을 서둘렀다. 5일로 예정된 확정고시를 목요일 종이관보(官報)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며 인터넷 관보에 내는 것으로 이틀을 앞당겼다. 교과서 발행체제를 거꾸로 돌리는 일을 충분한 여론수렴과 공개토론 없이, 군사작전 하듯 해치워도 되는지 묻고 싶다.

국정화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행정예고 기간에 교육부에 의견을 낸 47만여 명 중에서도 찬성이 15만여 명, 반대가 32만여 명으로 반대가 더 많았다. 정부는 집필기준과 검인정 강화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사태를 국정화로 몰아가 국론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역사 해석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국가가 일방적 시각을 주입하려 드는 정책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세계에서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나라는 북한 베트남 같은 일부 사회주의 국가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뀔 수밖에 없는 교과서를 만드느라 정부가 허비할 국력이 아깝고 안타깝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제 밤부터 국회에서 철야농성을 벌이며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야당이 국정화에 반대할 수는 있으나 극단으로 흐르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만들지도 않은 국정 교과서를 무조건 ‘친일 독재’ 교과서로 규정하고 장외투쟁에 이어 국회 보이콧이라는 강성 투쟁을 하는 것도 책임 있는 제1 야당의 자세가 아니다.

국회에는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각종 경제법안, 내년 예산안 심사 같은 현안들이 쌓여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국회로 돌아오도록 정치력을 발휘하고, 새정치연합도 당장 내년 예산안부터 꼼꼼히 심사해야 한다. 여야 모두 국정화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면 국민의 심판을 면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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