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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종이를 찢어 만든 번짐의 이미지

입력 2015-11-03 03:00업데이트 2015-11-0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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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작가 권영우 개인전
1987년 작 ‘무제’. 국제갤러리 제공
물감이 스며 번지도록 해 표현한 듯하지만 다가가 살피니 종이를 찢어내 붙여 만든 ‘번짐의 이미지’다. 12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권영우 작가(1926∼2013)의 개인전. 종이가 가진 질감을 표현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삼았던 그가 남긴, 자르고 찢고 뜯어내 붙여 형성한 흐르고 쏟아지고 솟아나고 흩날리는 이미지 30여 점을 선보인다.

갤러리는 전시 설명 자료 필두에 “대표적인 단색화(單色畵) 작가”라는 수식을 내걸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을 전후해 “서구의 미니멀 아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흐름”으로 일컬어지기 시작한 단색화는 요즘 국내 미술시장 관계자들에게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카테고리다. 올해 경매에서 단색화 작품은 한 점에 수억 원 낙찰가가 당연한 듯 여겨졌다. 해외 경매시장,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의 관심도 뜨겁다. 불과 2년 정도 기간에 나타난 현상이다.

사설 갤러리의 전시를 보며 금전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배제하려 하는 건 어리석은 노릇이다. 하지만 50여 년 동안 종이의 성질이 가진 표현의 가능성을 줄기차게 실험한 이 작가를 반드시 단색화라는 프레임 안에 놓고 헤아려야 할까 의구심이 든다.

푸른 비가 흘러내리고, 거뭇한 성에가 번지고, 뿌연 눈이 흩날리고, 대나무 숲이 일어나 눈앞을 가로막는다. 미술시장의 단색화 광풍은 혹시 그 그룹 안에 속한 것으로 단정된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새롭게 찾아낼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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