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중국이 세계의 바닷길 지배에 나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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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파나마 운하 건설,통제… 20세기 패권국 우뚝 선 美英佛
21세기 해운役事는 中이 주도… 美턱밑에 니카라과 운하 파고
중동… 中연결 끄라 운하 추진
세계의 바다에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변화의 격랑 직시해야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문인이자 탐험가인 월터 롤리 경(1552∼1618)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말을 정확히 인용하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유럽 변방의 가난한 국가였던 영국이 세계의 패권 국가로 발돋움해 가는 정황을 나타낸다.

그 후 19세기 말에 미국의 해군대학 학장이자 전략가였던 앨프리드 머핸(1840∼1914)이 비슷한 말을 했다. 역시 영국의 뒤를 이어 미국이 강력한 해상 지배력을 바탕으로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시대의 증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성급한 판단인 것 같다. 현재도 세계 물동량의 90% 정도가 바다를 지나고, 주요 해상 거점들을 장악하는 것이 강대국들의 군사전략이며, 무궁무진한 해양자원 개발이 인류의 미래에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바다가 더 중요한 무대다. 우리는 아직 ‘대항해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시대에 세계를 연결하는 해로를 완수한 것은 운하의 개통이었다. 수에즈 운하가 열리자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지 않는 훨씬 짧은 해로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자 남아메리카 끝단을 돌아갈 필요 없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곧장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를 통해 세계가 완전히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 운하들을 건설하고 통제하는 영국·프랑스·미국이 곧 세계의 패권국으로 우뚝 섰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고 10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의 해로가 다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올해 이집트에 제2 수에즈 운하가 열렸다. 운하의 폭과 깊이가 이전 것보다 훨씬 더 커져서 해운량이 크게 늘고 선박 통과 시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파나마 역시 운하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다. 갑문을 확장하고 수로의 폭과 깊이를 늘리는 이 공사가 완공되면 세계 항해의 여건은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 통상 화물선의 크기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선박, 곧 파나맥스(panamax)가 기준이었는데, 앞으로 파나마 운하가 확대되면 훨씬 더 큰 배들이 건조되고 해운량도 한층 더 커지게 된다.

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파나마 운하 북쪽에 니카라과 운하를 건설할 예정인데, 이 운하가 완공되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항해 거리가 800km나 단축된다. 또 중동 지역과 중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해로로 말레이 반도를 통과하는 끄라 운하도 계획 중이다. 이 운하가 개통되면 중동에서 출발한 유조선들은 해적이 출몰하는 위험하고 비좁은 믈라카 해협을 피해 훨씬 더 짧은 해로를 이용하여 동아시아로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세계적인 해운 역사(役事)들을 주도하는 것은 중국이다. 아시아 바닷길을 혁신할 끄라 운하는 중국과 태국이 함께 추진 중이다. 니카라과 운하 역시 중국 정부가 자본을 대서 건설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바로 미국의 턱밑에 중국이 운하를 파고 군사력을 배치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중국은 세계의 바닷길을 장악하려는 원대한 비전을 점차 현실화하는 중이다. 20세기에 미국이 바다를 지배했다면 21세기 들어 중국이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조만간 항공모함을 갖춘 중국의 대양해군이 세계의 해역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중국에 대해 우리는 습관적으로 대륙 문명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화(鄭和·1371∼1434)의 사례에서 보듯 역사적으로 중국의 해상력은 매우 강했다. 오늘날 중국이라는 용은 실력을 키워 다시 과거처럼 세계의 바다를 휘젓고 다니려 한다.

국내에서 우리끼리 ‘찌질한’ 권력 싸움으로 날을 보내는 동안 세계의 바다에는 격렬한 변화의 격랑이 이는 중이다. 우리 처지가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세계의 큰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중국#세계#바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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