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대학 4학년 되면 ‘감독’ 데뷔…국내 유일 ‘마이스터 스튜디오 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1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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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학생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보경 서동준 김지한 이은별 박태호 씨.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학생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보경 서동준 김지한 이은별 박태호 씨.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4학년 강한별 씨는 ‘감독’이다. 밑에 ‘어씨(어시스턴트)’ 4명을 두고 졸업 작품을 만들고 있다. 어씨들은 주로 2, 3학년들로 3D 기술, 배경 및 모델링, 2D 배경아트를 맡고 있다.

작품 이름은 ‘헤엄’. 물살이 빠른 여울에서 폭포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헤엄을 쳐야 하는 작은 물고기가 거친 환경에서 벗어나 이상향(칼데라 호수)을 찾아간다는 내용. 3D 기법을 바탕으로 한 2D 애니메이션 작품. 3월에 학과 내 30개 팀이 겨룬 작품 설명회에서 1등으로 뽑혔다. 학교에서 제작비 250만 원도 지원받는다.

강 씨는 ‘마이스터 스튜디오’(방장·김윤 교수) 소속. 이 스튜디오의 감독은 강 씨를 비롯해 7명. 강 씨는 기획 단계에서 졸업 작품 길이를 10분 정도로 구상했다. 그러나 소속사 방장과 협의하며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8분으로 줄였다. 84컷짜리 작품을 11월 중순 완성한다는 계획. 지금은 후배들과 4개 캐릭터(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 새끼 물고기, 날쌘 새)의 3D 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다.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는 마이스터 스튜디오 교육이라는 국내 유일의 수업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기술학교, 영국의 예술대학, 미국의 랩 제도를 벤치마킹해 만든 일종의 도제식 교육 제도.

4학년은 기획서를 발표하고 감독으로 데뷔한다. 2, 3학년은 감독의 팀원으로 들어가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기술을 익힌다. 이들도 4학년이 되면 감독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식이다. 교수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필요한 지식을 전수하고 필요하면 산업체 전문가를 불러 연결해 준다. 스튜디오별로 산업체 전문가 멘토가 1명 이상 있다. 이들은 한 달에 네 차례 스튜디오를 찾아와 자문에 응하거나 특강 형식으로 최신 기술을 가르친다.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윤태섭 교수는 “마이스터 스튜디오는 독일의 기술학교, 영국의 예술대학, 미국의 랩을 벤치마킹했다. 학생의 창의성을 살리고 산업체의 최신 기술을 교내로 도입한 교육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윤태섭 교수는 “마이스터 스튜디오는 독일의 기술학교, 영국의 예술대학, 미국의 랩을 벤치마킹했다. 학생의 창의성을 살리고 산업체의 최신 기술을 교내로 도입한 교육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윤태섭 교수는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학생은 수업과 동아리 활동을 하고, 교수는 토론식 교육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산업체의 최신 동향을 교내로 끌어들인 교육”이라고 말했다. 저학년 때는 업체탐방과 전공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고학년으로 가면 산업체 제작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안에는 5개의 마이스터 스튜디오가 있다. 2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2개),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1개), 드로잉 스튜디오(1개), 모션 그래픽 스튜디오(1개)다.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2D 스튜디오내 수업시간.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띄워진 모니터 너머로 이실구 교수와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 2D 스튜디오내 수업시간.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띄워진 모니터 너머로 이실구 교수와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학생들의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스튜디오별로 작품을 담아내는 형식이 조금씩 다르다. 박보경 씨(4학년)는 2D 애니메이션으로 공익광고를 만들고 있다. 작품명은 ‘NO NO’. 동물 캐릭터를 등장시켜 공중 질서를 지키자는 캠페인성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어씨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작품을 만들 생각. 박태호 씨(3학년)는 노래 ‘업다운 펑크’를 새로운 스타일로 해석한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팀에 속해 있다. 팀원 6명이 춤을 추는 장면 등을 찍어 3D 배경에 입히는 모션 그래픽 방식이다.

3D 마이스터 스튜디오 방장인 김윤 교수가 학생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3D 마이스터 스튜디오 방장인 김윤 교수가 학생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김윤 교수는 “마이스터 스튜디오 교육은 선후배가 함께 연구하고 구슬을 꿰어 뭔가를 만들어 내는 형식”이라며 “주입식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선후배간의 기술전수가 자연스레 이뤄진다”고 말했다. 실제 강 씨도 작품을 만들면서 팀원들에게 ‘애프터 이펙트’를 7주간 가르쳤다. ‘애프터 이펙트’는 3D 애니메이션에 중요한 캐릭터와 배경을 편집하는 프로그램. 그는 지난해 1년간 휴학하고 영화제작사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다 이 프로그램을 배웠다. 그는 강의료로 장학금 40만 원을 받았다.

마이스터 스튜디오 교육의 또 다른 장점은 현장 교육. 그동안 수업을 받지 않는 시간에 기업 탐방을 하거나 전시회를 찾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 밖 교육을 수업 안으로 끌어들였다.

모션 픽쳐 마이스터 스튜디오 수업. 학생들이 각자의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동영상을 보고 있다. 멀리 교단 쪽에 윤태섭 교수의 모습이 보인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모션 픽쳐 마이스터 스튜디오 수업. 학생들이 각자의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동영상을 보고 있다. 멀리 교단 쪽에 윤태섭 교수의 모습이 보인다. 윤양섭기자 lailai@donga.com
윤태섭 교수의 마이스터 스튜디오 수업. 2, 3, 4학년 학생들이 빌 비올라 전을 보고 온 소감을 밝히는 자리였다. 수업은 개인별 대형 애플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이뤄졌다.

윤 교수. “비올라의 동영상 작품에서 원샷의 길이가 30초 이상 길게 이어졌다. 15초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현재 광고 추세와는 차이가 있다. 여러분이 느낀 것은 무언가.”

이상현 씨(2학년). “스마트폰의 빠름에 익숙한 나로서는 지루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느린 화면을 계속 보다 보니 집중력이 생기고 느린 것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임형택 씨(4학년). “마음에서 느끼는 영상을 마치 창문을 통해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만 스크린이 좀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윤 교수. “전시회를 간 이유는 사물을 다양하게 접근해보라는 뜻에서다. 그래야 폭넓은 시선이 생긴다. 내 분야가 아닌 것도 봐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다음 주에는 KOBA 전시회를 가기로 했으니 거기서 또 세계적인 영상과 음향, 조명의 추세를 살펴보기로 하자.”

교육부는 한서대 영상애니메이션 학과의 마이스터 스튜디오 교육의 우수성을 인정해 지난해 명품학과로 선정했다. 지난해 1억9600만 원을 지원했고 앞으로 4년간 매년 같은 액수를 지원한다. 이 돈은 첨단 장비 확충과 현장 교육 강화 등에 쓰인다.

지난해 영상애니메이션 학과는 또 한번 일을 냈다. 문화재보존학과와 공동으로 ‘문화산업융성 디지털인재양성 사업단’을 만든 것. 기존 두 학과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뭔가 블루오션을 만들어보자는 뜻이었다. 그 결과 ‘문화융성 디지털’이라는 특성화 전공트랙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역시 교육부의 특성화 사업(CK-1)으로 선정돼 매년 2억1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이 트랙에서 36학점을 이수하면 별도의 문화디지털 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올해 두 학과에서 45명이 이 트랙에 등록했다. 그동안 문화재보존학과는 문화재발굴이나 문화재보존 분야에, 영상애니메이션 학과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 주로 진출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문화디지털 학사 학위를 추가로 받은 학생은 훨씬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학교 측은 기대하고 있다. 사업단은 앞으로 고대 유물 파편의 사라진 조각들을 맞추는 데 3D 프린팅 기법을 활용하는 교육도 추진 중이다.

영상애니메이션 학과는 국제화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원어민 교수를 임용하거나 교환학생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스웨스트 대학과는 2007년 교류 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이래 매년 교수와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2018년에는 남아공에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를 설립하고 공동 제작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또 중국 쑤저우와 상하이에도 인턴을 파견하고 있다.

졸업 후 진로는 게임회사, 디자인 회사, 애니메이션 회사, 방송국, 일반 기업 등 다양하다. 이스트소프트(게임회사)나 캔버스, 거성디자인, 나무공작소, 예손엔터테인먼트(이상 디자인 회사), DPS, 코드빈, 이웍스(이상 소프트웨어개발 회사), G&G엔터테인먼트(애니메이션 회사)를 비롯해 방송국 등에도 진출하고 있다. 특히 춘천의 DPS에는 20명이 취업했다.

졸업생이 창업한 회사로는 ‘스튜디오 O’와 ‘AR모드’가 유명하다. 스튜디오 O에는 졸업생 10명이 입사해 있다. 천안의 테크노파크에 입주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AR모드는 KBS의 ‘외계소년 삐삐’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입학정원은 30명. 내년부터 35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외국인 학생도 20명이 배우고 있다. 대부분 중국 학생들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 학생도 있다. 입학 성적은 지난해 수능 평균 4.8 등급. 장학금은 1인당 연 230만 원으로 넉넉한 편.

서산=윤양섭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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