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이민자들이 일자리 뺏어가”… 쌓이는 미래 불안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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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리콴유, 싱가포르의 고민]

명암 교차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이 열린 29일 10대 학생들이 비를 맞으며 운구 행렬을 
기다리고 있다(위 사진). 싱가포르는 리 전 총리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권위주의 해소, 다민족 융합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2013년 12월 인도계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리틀인디아 거리에서 폭동이 일어나 차량 10여 대가
 파손됐다(아래 사진). 사진 출처 스트레이츠타임스
명암 교차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이 열린 29일 10대 학생들이 비를 맞으며 운구 행렬을 기다리고 있다(위 사진). 싱가포르는 리 전 총리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권위주의 해소, 다민족 융합 등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2013년 12월 인도계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리틀인디아 거리에서 폭동이 일어나 차량 10여 대가 파손됐다(아래 사진). 사진 출처 스트레이츠타임스
“미래가 불안하다.”

기자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20, 30대 청년들은 ‘포스트 리콴유(李光耀)’ 시대에 대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2030세대는 1주일 동안 이어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추모 행렬에 적극 동참했다. 이들은 리 전 총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리 전 총리의 통치를 직접 경험한 ‘리콴유 세대’는 아니지만 그가 존경받는 건국의 아버지라는 점은 교육과 언론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은 컸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6000달러로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선진국이다. 실업률은 낮지만 다국적기업 등 인기 직장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상실감이 컸다. 출신국을 따지지 않는 ‘능력주의’에 본토인들이 치이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엿보였다.

싱가포르는 이주민 비율이 전체 인구의 28%에 달한다. 싱가포르경영대(SMU) 정치학과 배유일 교수(42)가 최근 정책학 수업을 듣는 학생 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싱가포르가 장차 맞닥뜨릴 가장 중요한 정책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민자 증가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고령화로 인한 이민자 증가 △이민자 증가로 인한 다문화 정책 △고령화로 인한 연금 및 복지 순으로 답변이 많았다.

배 교수는 “대부분 이민자 문제를 지적했다”며 “다국적기업 금융계 학계 등 좋은 일자리는 화이트칼라 이민자인 ‘엑스팻(expat)’에게, 힘든 3D 업종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에게 뺏기고 있다는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2030세대는 이민자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경계했다. 니디아 베로니카 씨(21·여)는 “학과생 중 절반이 외국인이다. 중국과 인도 출신이 특히 많다. 이들로 인해 싱가포르인이 설 자리가 좁아져서 싫다”고 말했다.

최근 급등한 집값에 대한 무력감도 호소했다. 싱가포르 국민 90%는 평생에 걸쳐 월세 형식으로 집값을 갚아 가는 공공주택에, 나머지 부유층 10%는 콘도에서 생활한다. 상위 1% 이내의 부촌인 센토사, 탕린, 홀란드 등지의 집값은 2500만∼3700만 싱가포르달러(약 200억∼300억 원)를 가뿐히 넘는다. 또 자동차 가격과 유지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비싸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런 불만은 극심한 빈부 격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은행이 소득 불평등을 매기는 지니계수에서 싱가포르는 155개국 가운데 123위에 머물렀다. 엘살바도르, 나이지리아와 비슷한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하다.

부모가 경영 컨설턴트와 교사인 난양이공대(NTU) 림추이 씨(23·여)는 “결혼할 때 돈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공대생이라 취직하면 월급이 3500싱가포르달러(약 280만 원) 정도로 괜찮은 편인데도 웬만한 공공주택에 들어가려면 계약금 4000싱가포르달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불평등으로 인해 더이상 스스로 부와 명예를 성취할 수 없다는 상실감도 심각했다. 회사원 추이왕림 씨(27)는 “교육의 기회는 보장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우열반을 운영하는 탓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 여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사교육을 통해 엘리트 코스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분출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싱가포르국립대(NUS) 한인학생회장인 황재윤 씨(재료과학공학과 3학년)는 “온라인상에서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등 정치적 의견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막상 선거 때가 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또 집권당을 뽑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젊은이는 “특권층은 2000억 원짜리 집에서 사는 반면 이주노동자들은 단칸방에서 생활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도 커지는 추세”라며 싱가포르의 미래를 걱정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싱가포르#이민자#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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