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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단독]조선 사회경제사 ‘비밀의 문’ 활짝

입력 2015-03-17 03:00업데이트 2015-03-17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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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한국학중앙연구원, 日교토대 ‘가와이 문고’ 인터넷 공개
일본 교토(京都)대가 소장한 가와이(河合) 문고 중 ‘시민등록(市民謄錄)’ 표지와 속지. 이 책은 조선시대 경제생활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조선경제사 연구에 필수자료로 손꼽힌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일본 교토(京都)대가 소장한 가와이(河合) 문고 중 ‘시민등록(市民謄錄)’ 표지와 속지. 이 책은 조선시대 경제생활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조선경제사 연구에 필수자료로 손꼽힌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제공
“어물전(魚物廛) 상인들이 아룁니다. 우리는 예부터 종로대로 옆에서 300여 년을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난전 무리들이 집단을 이뤄 골목 곳곳에서 난매(亂賣·자유로운 상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비변사는 형세상 갑자기 난전을 폐지할 수는 없다면서 어물 생산량의 4분의 3은 저희가, 4분의 1은 신전(新廛·난전)이 취급하도록 했습니다. 또 요역(요役·세금)은 3분의 1은 저희가, 3분의 2를 난전이 부담토록 했습니다. 이에 난전 상인들이 부당하다며 민원을 제기하고 있으나 이미 결정된 대로 시행하옵소서.”

조선 숙종 41년(1715년) 한 어물전 상인이 육의전과 도량형, 물가를 관장하던 평시서(平市署)에 올린 청원서다. 조선 후기 시장이 확대되면서 육의전 독점체제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이 청원서는 일본 교토(京都)대가 소장한 가와이(河合) 문고의 ‘시민등록(市民謄錄)’에서 최근 발견됐다. 시민등록은 평시서의 업무기록을 모은 문서다. 조선경제사 연구에 필수자료로 꼽히는데 현재 국내에는 없고 가와이 문고에만 남아 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일본 교토대 부속도서관과 가와이 문고에 대한 공동 조사와 인터넷 공개에 최근 합의했다. 고려대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다음 달부터 2018년까지 4년에 걸쳐 고서 300∼400종, 고문서 2000여 점의 원문 이미지를 인터넷에 순차적으로 올릴 예정이다.

가와이 문고는 일본인 조선 사학자인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1873∼1918) 박사가 일제강점기 수집한 조선시대 고문헌 자료들이다. 가와이 박사는 1898년 도쿄제국대를 졸업하고 1907년 동양협회전문학교(현 다쿠쇼쿠대) 경성분교장으로 서울에 왔다. 그는 당시 조선 경제사를 연구하면서 관련 고문서를 모은 뒤 교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혁혁(奕奕)하도다. 세종이시여! (중략) 성음과 음률이 배합돼 글자를 만들고 종성(終聲)으로 조화를 이뤄 질서 있게 조직됐다. 닭과 개의 울음소리를 모두 형용할 수 있고 부녀자들과 백성들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다.’



가와이 문고에는 18세기 초반 명곡 최석정(1646∼1715)이 쓴 ‘경세훈민정음(經世訓民正音)’도 들어 있다. 15세기 간행된 훈민정음해례 이후 가장 앞서는 훈민정음 연구서로 국내외를 통틀어 오직 한 권뿐이다. 당시 주자 성리학을 신봉한 노론계 학자들은 중화사상에 입각해 우리 한자음을 중국어 원음에 가깝게 교정하려고 했다. 이에 최석정은 “조선의 한자음(東音·동음)이 오랑캐의 잦은 외침으로 변질된 중국음보다 중화에 더 가깝다”며 “훈민정음이 이상적인 정음(正音)을 복원하는 데 탁월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박영민 고려대 교수는 “그동안 18세기 최고(最古) 연구서로 분류됐던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1750년)보다 40년가량 앞서는 책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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