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선미]기업과 농가의 행복한 상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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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발단은 깻잎이었다.

“깻잎이 상자 한가득 배달돼 왔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삼겹살을 싸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말로는 난감하다면서 미소가 가득했다. 강원도의 한 농장에서 ‘꾸러미’를 배달시켜 먹는다는 내 지인의 이야기다. 꾸러미는 지역 농가가 제철 농산물을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서비스다. 깻잎을 들고 고뇌하는 그를 상상하니 근사했다. 부러우면 진다. 나는 제주의 농산물을 원했다. 친구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무릉외갓집!”이라고 했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찾아봤다. 무릉외갓집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의 27개 농가가 생산하는 회원제 농수산물 직거래 브랜드였다. 수확한 과일을 든 농부들의 사진이 정겨웠다. 한 달에 한 번 받아보는 회원(연간 43만8000원)으로 가입했다.

두근두근. ‘나의 첫 꾸러미’가 배달돼 왔다. 박스(5kg들이) 속에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이 들어 있었다. 동봉된 편지는 과일을 먹는 방법도 소개했다. ‘새콤달콤함을 좋아하는 분은 천혜향을 한라봉보다 먼저 드세요.’ 알고 보니 무릉외갓집은 공기청정기업체 벤타코리아가 무릉리 마을을 후원하며 함께 만든 영농조합법인이었다.

농가와 상생하는 한 기업의 사회공헌이 내게 ‘기업의 농업참여’에 대한 필요성을 일깨웠다.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농민과 기업의 대결 프레임에 갇혀 있는 동안 지구는 뜨거워지고, 농가는 노쇠해지고, 밥상은 외국산에 점령되지 않았나.

기업의 농업 참여는 사실 ‘열려’ 있다. 농업회사법인을 만들거나 농업법인과 연대할 수 있다.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할 때 비농업인 출자 한도는 총출자액의 90%까지 허용되므로 법적 제약이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쉽지 않다. 동부그룹의 자회사인 동부팜한농의 토마토 유리온실사업은 2년 전 농민단체의 반발로 중단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기업 참여에 대한 농가의향 조사’(2013년)에서도 응답자의 58%가 ‘반대’였다. 기업 자본이 영세 규모 생산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여태껏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갔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은 ‘지구를 생각하는 상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농업법인 ‘세븐팜 도미사토’를 세운 대형 유통업체 ‘세븐앤드아이그룹’은 ‘세븐일레븐’ 편의점 등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퇴비공장을 설립해 생산한 퇴비를 농가들에 공급하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차(茶) 계열사인 ㈜장원은 차 생산자연합회와 다음 달 ‘한국차생산자협동조합’이라는 차 수출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아모레는 해외 판로를 개척하고, 차 생산 농가는 고급 수제차를 생산하게 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가격이 떨어진 양파와 단감을 사들여 수출하고 단체급식 메뉴로도 활용하고 있다.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은 떨어진 과일을 재료로 잼을 만들었다. 이마트는 어제(5일)부터 국산 농수축산물의 판로와 농가 컨설팅을 지원하는 ‘국산의 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간 100억 원을 쓸 예정이란다.

중소기업이 할 일이 있고, 대기업이 할 일이 있다. 한국의 재계 2, 3세가 농가와 상생하는 방안을 계속 내놓기를 바란다. 이들이 ‘의식 있는’ 로컬푸드의 소비를 일으키면 침체된 실물경기가 회복될 것이다. 창업주 세대가 일군 수출한국 신화를 ‘메이드 인 코리아’ 농산물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기업과 농가가 서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구체적인 ‘기업의 농업참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과 농가의 행복한 상생, 기대된다.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기업#농가#상생#무릉외갓집#영농조합법인#벤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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