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손성원]한국은행은 경기부양에 나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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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분기 경제성장률 2년만에 최저… 2014년 소비자물가상승률 1.3%
한국경제 디스인플레이션 진입
한국은행 걱정과 달리 가계부채 심각하지 않고 외환 유출 충분히 관리 가능
금리 0%대로 인하 포함… 공격적 통화완화 나서야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이 지난달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회의에서 글로벌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지지했다. 경기 부양 없이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저성장의 터널에 갇힐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캐나다 호주 인도 싱가포르 스웨덴 등의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을 펼쳐왔다.

작년 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3%에 그쳤다. 유가 하락 효과를 제외해도 디스인플레이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은행은 금리인하를 거부했다. 왜일까.

한은이 통화 완화 정책을 반대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의 과다한 가계 부채 때문이다. 힘 빠진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소비가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소비는 국내총생산(GDP) 증가보다 느린 속도로 늘고 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면 한국의 실질금리가 상승해 소비지출을 위축시킨다. 가계부채의 약 70%는 유동부채이므로 금리인하는 소비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밖에서 들리는 것만큼 걱정스러운 것은 아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지하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여서 GDP가 저평가돼 있다. 지하경제까지 포함한 실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훨씬 낮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의 가계들은 채무를 상환하고도 남을 만한 현금, 예금, 상장 주식 같은 유동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채무 대비 금융자산 비율도 2011년 이래 가장 높다. 다행히도 가계대출의 연체율도 매우 낮다.

한은은 양적완화에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곧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점을 든다. 미국은 금리를 올리는데 한국이 금리를 낮추면 외환 유출을 초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은이 미 연준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한국 경제가 디스인플레이션으로 허우적대는 반면 미국 경제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2008년 양적완화를 시작했을 때 한은은 뒤따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쫓아갈 이유가 전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유로존 중국 등 한국의 주요 교역국들이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국제 금융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에 맞서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4000억 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액을 확보해 놓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충분하지 못했다.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한국 경제는 훨씬 더 튼튼해졌고, 단기외채 비율도 크게 떨어졌다. 경제 규모나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를 감안하면 어지간한 외환 유출은 한국이 감내할 수 있다. 어쨌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은 필요하다. 다만 장기적 상승 추세 속에서 외환보유액이 어느 정도 늘고 줄어드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

한은은 통화 완화에 나서지 않는 세 번째 이유로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선 일본이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점유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엔저가 일본에 대한 한국의 경쟁력에 거의 혹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지난 12개월 동안 원화 가치는 엔화에 비해 12% 올랐다. 그리고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대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이래 3분의 1 정도 줄어들었다. 한일 두 나라의 수출경쟁력은 양국 통화의 상대적 가치 외에 여러 가지 요인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엔화에 비해 원화 가치가 오르면 일본에 대한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분명 하락할 것이다.

통화정책은 무딘 도구다. 금리인하는 경제 일각에는 달갑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은은 큰 그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경제성장과 디스인플레이션을 봐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는 지금 중앙은행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필요로 한다. 한은은 0%에 근접하게 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포함해 보다 공격적인 통화 완화에 나서야 한다.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한국은행#디스인플레이션#가계 부채#지하경제#F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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